지난 10일, 윤인중(데레사·91·의정부교구 전곡본당) 할머니는 소풍 가는 아이마냥 잠을 설쳤다. 몇 번을 뒤척이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도 안 된 시간, 방망이질 치는 가슴이 먼저 이날이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성지순례 떠나는 날임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할머니의 일과도 덩달아 바빠졌다. 평소대로 아침기도를 드리고 묵주기도까지 몇 꾸러미나 바친 후에야 엷은 새벽이 벗겨지고 있었다.
순례의 목적지인 충북 제천 원주교구 배론성지(담당 여진천 신부)로 달려갈 기차가 기다리고 있는 경원선 끝자락 전곡역은 이른 새벽부터 밤잠을 설치고 나온 신자들로 북적였다.
이날 함께 손을 잡고 기차에 오른 이들은 경기도 연천지역에 위치한 전곡본당(주임 김규봉 신부)·연천본당(주임 김부섭 신부)·상리본당(주임 라병국 신부) 등 3개 본당 신자들. 모 본당인 전곡본당에서 한 식구로 지내다 세 본당으로 나뉘어 신앙생활을 해오던 신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우기 여념이 없었다.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접경지역에 자리하고 있는데다 외진 곳에서 농사를 짓던 토박이들이 대부분이어서 세 본당 신자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연천군 왕징면에서 태어나 지금껏 연천지역을 떠나본 적이 없는 윤 할머니 같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기차로 순례하기는 처음이에요. 마음은 있어도 못 보던 얼굴도 오랜만에 보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배론성지에서 신자들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등을 바치며 또 한 번 함께하는 신앙의 기쁨을 만끽했다. 일과 학업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도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추억을 만들아 나갔다.
어머니 유연복(안나·82·수원교구 용인대리구 반월성본당)씨를 모시고 아내 황미자(데레사·51·서울 둔촌동본당)씨, 아들 덕교(빈첸시오·고2·서울 둔촌동본당)군, 딸 세림(소화 데레사·중2)양과 성지순례에 함께한 김용호(프란치스코·54·의정부교구 전곡본당)씨는 “온 가족이 함께 성지를 순례하기는 처음”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차분히 신앙을 돌아볼 수 있게 돼 뿌듯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성지순례를 위해 전곡본당은 냉담교우는 물론 아직 신앙을 접하지 못한 비신자 가족과 개신교 신자까지 초대하는 등 공을 들였다. 이런 노력 덕에 이날 성지순례에는 전체 참가자 440여 명 가운데 70여 명의 비신자가 함께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김규봉 신부는 “지역사회에서 3개 본당이 지혜를 모으면 신자들과 지역주민들이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복음도 전할 수 있는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순례를 함께하게 됐다”며 “소통과 나눔을 통해 이웃에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을 모아낼 수 있어 모두가 행복한 성지순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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