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얼굴은 초췌하고, 기침을 하는 것을 보니, 감기가 이제 막 걸린 것 같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감기 때문에 병원 다녀오는 길이랍니다.
“신부님, 요즘 감기 지독하다던데!”
기침을 하며, 고개를 가로젓던 신부님은, “나도 이제 늙었나봐! 좀처럼 감기는 걸리지 않는데!”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감기는 약 보다도 며칠, 푹 쉬는 것이 좋다던데!”
그러자 신부님은, “내가 작년에 감기에 대한 큰 경험을 한 후에는 이제 ‘감기다’ 싶으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 잘 말씀드려서, 최대한 빨리 낫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
“아니,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작년 일, 말도 하지마! 생각만 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니, 누구나 앓을 수 있는 감기인데,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자 신부님은 기침하는 목소리로, “이거 가톨릭 신문에 싣는 거 아냐? 뭐 실어도 할 수 없지, 실명이 아니니까. 음, 다름 아니라, 작년에 내가 감기에 걸린 적이 있어. 그래서 며칠을 고생 좀 했지. 사실 내가 병을 더 키운 것도 있고! 예전에 특수사목 하던 몇 년 동안은 독감 예방 접종도 한 적이 없고,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으니, 감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 본당 주임이 된 후에 작년 겨울 감기에 걸린 거 있지! 주변에 감기는 ‘약 먹으면 보름, 약 안 먹으면 이 주일’, 뭐 그런 말 있잖아! 그래서 혼자 생각에 ‘이번 감기는 열흘 정도 지나면 떨어지겠거니’ 했어. 그런데 일주일이 좀 지나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사제관 앞에 아침저녁으로, 다양한 민간요법 처방이 가미된 감기 관련 음식들이 놓여 있는 거야! 배즙, 배즙에 양파, 배즙에 양파와 대파, 통으로 된 배와 생강 등. 아마 감기 관련 우리나라의 모든 민간요법이 다 동원된 것 같아. 그리고 ‘신부님 빨리 나으세요!’하는 쪽지와 함께. 사실 나는 ‘감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본당 신자 분들은 하루하루, 내 걱정을 하고 있었던거야! 그때 또 깨달았지, 내가 공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본당 신자들은 너무 선하고, 고마운 분들이라는 것을! 음, 내가 감기에 걸리자, 신자분들도 나와 함께 마음의 감기를 걸렸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제부터는 감기 느낌이 오자마자, 곧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신자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보이려고! 내가 감기 걸리면, 우리 본당 신자들 너무 걱정해, 너무.”
‘신자들이 너무 걱정한다’는 말을 남기고 신부님은 서둘러 본당 사제관으로 갔습니다. 왠지 자랑 같은 신부님 말을 생각해 보니, ‘그 신부님에 그 신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당 신부님 건강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신자들이나, 본당 신자들 걱정 안 끼쳐드리려고 몰래 서둘러 병원을 다녀오는 신부님 마음이나! 서로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사목자와 신자’의 모습. 충분히 자랑할 만한 관계입니다. 참말로 부러운 자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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