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요
40대 중반의 기혼여성입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주식투자로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처음엔 남편에게 말도 못하고 속으로 미안해하며 경제적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 분주해하고 있을 때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자매님께로부터 “하느님께서 주신 시련”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은 안정 됐고, 소홀해진 신앙생활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신부님, 하느님께서 주신 시련이니 잘 해결되겠죠?
대답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소개하는 ‘시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아브라함, 욥과 같이 당신께서 뽑으신 사람들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을 시련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용어가 많은 신앙인들에게 잘못 설명되고 이해되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까지 왜곡시키는 경우들이 발생하곤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하느님의 시련’으로 간주하다보면 우리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점을 찾는 것에서 오히려 멀어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향들은 성숙하지 못한 타종교들에서도 많이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대학에 떨어진 것은 조상님께 소홀했거나 누군가의 죄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들입니다.
일반적으로 곤경 중에 있는 이들은 그것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모습들이 조금씩은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의 거짓 원인들을 내려놓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의 개입만을 기다리게 될 때 문제는 점점 커집니다. 사실 자매님께서 곤경 중에 계실 때 듣게 된 다른 자매님의 말씀은 큰 위로가 되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 자매님의 행동이 옳고 그르냐를 논하기 이전에 자매님께서 지닌 성향 가운데 그런 말이 잘 들리게 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수동적 의존’ 성향이라고 하는데, 이 성향은 현재 일어난 문제를 대면하는 것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과정을 회피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남편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했는가?’ 그리고 ‘손실은 어느 정도이고 그것을 복구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방법은 무엇인가?’ 등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주해야 할 질문을 회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회피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렇게 회피하는 가운데서도 지울 수 없는 내적인 불안을 없애기 위해 자신만의 도피처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것이 여러 형태의 중독(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신앙도 그런 도피처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자매님께서 믿고 계시는 신념이 현 상황을 사실 그자체로 대면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자매님께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염려가 됩니다.
자매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라시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하느님의 은총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대면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답변을 마치며 저는 자매님께 최민순 신부님의 “고인의 기도”라는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주여, 오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길 원치 않습니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 문의 : 이메일 info@catimes.kr 을 통해 김인호 신부님과 상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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