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글을 쓸 때 그림을 그리며 쉬고, 그림을 그릴 때 글을 쓰며 쉰다고 할 정도로 글과 그림을 자신의 일상으로 여겼다. 따라서 장 콕토의 시집에는 자연스럽게 글과 그림이 함께 수록되기도 했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했던 그의 스타일처럼 그림들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선과 색으로 표현되었다. 프랑스 망통(Menton)에 있는 장 콕토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그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또한 장 콕토가 작업한 프랑스의 몇몇 소성당 벽화들과 장식적 그림들은 평소 자유분방했던 그의 예술적 기반들이 종교적 주제를 만나 현대적이고 환상적인 종교적 공간을 연출하는데 일조했다.
우리가 장 콕토의 이 벽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은 프랑스가 아닌 런던의 화려한 극장가 골목의 한 성당이다. 네온사인이 번뜩이는 런던의 한 복판에서, 누군가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 성당에 들어선다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에 놀랄 것이다. 성당의 주 제단 왼쪽에 있는 장 콕토의 소성당은 추운 겨울 밤 어두운 거리에서 창문에 비친 따뜻한 집안을 들여다보는 듯, 유리로 된 공간 안에 환한 분위기의 벽화를 갖추고 있다. 평소 종교적인 인물도, 종교화가도 아니었던 장 콕토가 이 아름다운 소성당의 벽화를 제작했다는 것은 작품이 소장된 장소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제대 뒤에 있는 중심 벽에는 예수의 처형장면이, 왼쪽 벽에는 천사 가브리엘과 성모가 대면하는 순간이 묘사되어 있고, 오른쪽 벽에는 천사들과 함께 승천하는 성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독특하게도 십자가처형 장면에서 예수는 없고 과감하게 생략된 못 박힌 그의 다리만이 보인다. 십자가책형에 그려진 인물들은 예수에게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주었던 로마 군인들과 사랑과 위로의 힘이 되어주었던 세 명의 마리아가 주되게 재현되었다. 벽면을 꽉 채운 인물들은 성서에서 설명된 대로 자신의 역할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 새롭게 주목되는 것은 예수의 피로 꽃 피워진 장미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고통의 신비를 통해 기도의 장미꽃송이를 바치는 로사리오의 신심과 연관된 상징일 것이다.
프레스코의 인물들은 여느 스케치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단순한 선으로 그려졌다. 또한 윤곽선에서 배어 나온 듯 옅게 칠해진 파스텔 톤의 색들은 인물들로 꽉 채워진 공간에 여백을 주어 화면에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심지어 소성당의 벽면에 조명 빛이 더해지면 범상치 않은 검은 태양 아래 행해진 처형 장면마저도 관람자의 시선을 온화하게 만든다. 이것은 벽화에서 십자가 처형 장면이 예수보다 성모에게 집중된 것임을 그녀의 눈물과 장미꽃, 좌우 벽면의 성모 그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성모의 겸허한 순종이나 아들의 고통을 수용하고 내면화했던 그녀가 승천하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실제 이 벽화는 다재다능했던 만큼 인생의 곡절도 많았던 그가 70대의 나이로 일주일 만에 집중적으로 완성한 작품이었다. 인생의 황혼에서 장 콕토는 이 작업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특히 작업을 마치면서 노트르담 성당의 열린 마음을 잊지 않겠노라고 했던 언급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벽화 작업은 단순히 종교적 공간을 시각적 이미지로 설명하고 장식하는 수준을 넘어서 보인다. 그래서인지 장 콕토의 소성당은 성모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낯선 방문자에게도 충분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