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묵」 등의 가톨릭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생전 모습.
엔도 슈사쿠 지음/이은형 옮김/264쪽/1만 5000원/도서출판 지운

엔도 슈사쿠는 1948년 일본 게이오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리옹대학에서 프랑스 현대 가톨릭문학을 공부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수의 인생론과 수필집을 남겼다. 이 책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에 걸쳐 그가 발표한 10편의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특히 단편 10편 중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순교자’(1959)가 단연 눈길을 끈다. ‘마지막 순교자’는 교우촌을 이루고 살아가던 우라카미의 나가노마을을 배경으로 1867년 일본의 4번째 천주교 대박해 사건 전후의 상황을 그린다. 혹독한 고문에도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 이들과 고문이 두렵고 고통스러워 배교하는 이들의 복잡한 심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독자들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는 주인공 키스케의 신앙을 통해 순교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한편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조명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은 7년 후 발표한 장편소설 「침묵」(1966)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대표작인 「침묵」은 17세기 일본에서 벌어졌던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 상황 안에서 ‘하느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앙을 버려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의 심리 묘사 부분은 전 세계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작가는 두 작품을 통해 일본 천주교회사에서의 ‘순교와 배교’를 다룬다. 저자가 일생을 두고 고민해온 이 문제는 동시에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엔도 슈사쿠는 ‘마지막 순교자’를 비롯한 10편의 단편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간 내면의 유약함을 다뤘다. ‘주르당병원’(1956)에서는 같은 일본인 유학생인 칸노에 비해 늘 자신없고 약한 모습만을 보이는 주인공의 열등감을 엿볼 수 있다. 이는 흡사 ‘마지막 순교자’에 등장하는 키스케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 흥미롭다.
‘군종신부’(1959)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담담하고 생생하게 전하며 군종신부의 입을 빌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논쟁한다.
‘여름의 빛’(1958)은 만주사변 시절 중국 다롄에서 일어난 식수 오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누군가에 의해 온 동네의 우물물이 납 가루로 오염되자 마을 사람들은 죄 없는 중국인 노역자 한 명을 지목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군중에 의해 옷 벗김 당함과 침 뱉음과 가시면류관을 쓰게 되는 예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의정부교구 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머리말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유약함은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애써 외면하게 되는, 그래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내면을 혼란스럽게 하는 그 무엇과 절묘하게 겹치게 된다”고 소개하며 “그러나 책을 읽어가는 동안 어느새 스스로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생기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