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예수 마리아!”
성당 정문을 들어서는데 앞서 가시던 한 할머니께서 문턱에 걸려 넘어지실 뻔 했다. 순간 할머니 입에선 ‘예수 마리아’가 튀어나왔다. 그리곤 묵주를 꺼내드셨다.
“뭐 저런 일 쯤으로 예수님에 마리아까지 찾으시나….”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고 내심 못마땅하기까지 했다. 입으로만 ‘하느님 하느님’ 부르는 것도 일종의 모순이 아닌가.
하지만 성당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성호경을 그을 때 소리를 내는 것에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성당에 오면 큰 소리로 함께 기도문을 외우고 성가도 부르지만, 혼자 있을 때에 성호경을 소리내어 말하며 긋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내가 잘 하지 못해서 할머니의 모습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걸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 성당에 나오는 일이 종종 피곤할 때가 있다. 우선 성당에서는 형식을 너무 따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왜 그렇게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몇 달째 성당에 나오면서 무슨무슨 대축일을 엄청 많이 보낸 듯하다. 거의 매주 기념해야 하는 날이 있고, 달이 바뀔 때마다 성월 이름도 바뀐다.
가톨릭 전례의 엄숙하고 거룩한 분위기가 성당에 다니기 전부터 마음을 많이 끈 것은 사실이다. 또 사람들은 속성상 상징이나 형식을 원하는 때가 많다. 결혼할 때 반지를 교환하는 것도 소중한 약속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징을 주고받는 형식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때가 많다.
그래도 성당에 다니면서 달력부터 다시 알고 외우면서 드는 생각은 교회 안에서는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 꽤 많다는 것이다.
전례력, 교회는 1년을 주기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한다.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앞서서 지내는 대림과 사순시기는 외우기가 쉬웠다. 하지만 의무축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주일이 아니어도 주일과 똑같이 미사에 참례하는 날이 1월 1일부터 12월 25일까지 연달아 이어져 있다. 매주일 뿐 아니라 일 년 내내 뭔가를 기념하기 위해 성당에 가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직 이 축일들이 나와 어떤 관계로 이어져 가야 하는 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성찰해보기도 한다.
어떤 성월이 정해져 있는 것은 내 생활을 꽤나 규칙적으로 이어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지정된 달에는 특별한 전구와 은혜를 청하고,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했는데 또 무슨무슨 이름도 어려운 행사들만 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다양한 행사에 다 참례하고도, 행사에 대한 설명이나 자료 등을 따로 제공받지 못해 그 행사가 어떤 의미였는지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넘어간 것이 많다.
사람이 꾸준히 일정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형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연중 꽉 짜인 행사들을 쳇바퀴 돌 듯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에선 아직 벗어나기 어렵다. 또다시 연말이면 성탄대축일을 보내느라 바쁠 것이 아닌가.
그래도 지난주엔 성시간에 참례했는데, 순간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제대 위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성광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외우며 성체를 바라보니 마음 속 깊이 거룩함이 새겨졌다. 예비신자의 갈 길은 아직도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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