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키릴 악셀로드 신부.
아이는 점차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훗날 그는 엄격한 유대교 신앙을 간직하길 바랐던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제가 된다. 청각 장애인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드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자 하는 열망이 그 이유였다.
청각 장애인 가톨릭 사제는 우리나라 박민서 신부(서울대교구 청각언어장애인사목 전담)를 포함해 전 세계에 단 15명이 있다. 이 15명 중에 키릴 악셀로드(Cyril Axelrod) 신부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한 시청각 장애인 사제다.
키릴 신부는 남아프리카를 비롯해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등에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단체와 센터를 설립하며 그들에게 ‘이 세상에는 할 일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는 이후 시각 장애까지 오는 이중고를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사목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청각과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강연과 사목 활동을 펼치며 그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이 책은 키릴 신부의 자서전이다. 정통파 유대인 출신인 그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톨릭 사제가 돼, 종교의 차이와 장애의 어려움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사목활동을 전개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키릴 신부는 귀가 들리지 않고 나중에는 눈도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필 작가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이 책을 썼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출판사 편집자, 안내 통역사와 함께 촉각 수화(tactile sign language)와 지화(finger spelling), 컴퓨터와 이메일에 쓰는 점자를 번갈아 이용하는 고된 작업을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한다.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란 그의 원래 꿈은 랍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애인은 랍비가 될 수 없다는 유대교 율법 때문에 그의 꿈은 꺾이고 만다. 그가 랍비가 되기를 원했던 이유는 유대인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기에 좌절감은 더욱 컸다. 그는 이후 특별한 체험을 계기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제가 됐다. 사제가 된 그는 종교와 종파를 뛰어넘어 모든 이들, 특히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일했다.
또 그는 가톨릭 사제로서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남아프리카의 유대교 청각 장애인 공동체를 위한 수화 통역 예배를 추진하고, 한 유대인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과월절 만찬을 직접 준비하는 등 종교 간의 화합과 일치를 몸소 실천했다. 그런 그는 자신을 ‘가톨릭 랍비’라 칭한다.
가톨릭출판사는 「키릴 악셀로드 신부」에 음성 변환 출력용 바코드 ‘보이스 아이’를 삽입해 시각 장애인들도 음성으로 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 책의 판매 수익금 일부는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아울러 출판사 측은 오는 21일 오후 7시30분 서울 한강성당에서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를 주제로 저자 초청 강연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을 통해 서로 이해하는 공감의 장을 형성하는 한편 장애뿐 아니라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박민서 신부는 1997년 세계 유일의 청각 장애인학교인 갤러뎃대학교에서 키릴 신부와 만난 인연을 소개하며, 그를 가리켜 ‘21세기의 헬렌 켈러’라고 말한다.
“키릴 신부님은 중복 장애를 하느님의 선물로 생각하며 고통을 겪는 분들에게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을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신부님은 제게 시청각 장애가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장애인과 희망을 잃고 슬픔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게 큰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