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중앙로터리에서 공항쪽으로 2백여미터 가다 보면 순교성지「관덕정」이 나온다. 관덕정을 마주하고 불과 20여미터 앞에 옛날 구청으로 쓰이던 회색빛 건물. 이곳에 강정섭씨가 운영하는 중앙한의원이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예수 성심을 표현한 커다란 액자와 성상들이 한눈에 신자임을 알아 보게 한다. 안내된 원장실에선 왜소하게 느껴질 만치 자그마한 체구의 한 남자가 넉넉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다. 그가 강정섭(파스칼ㆍ58)씨다.
『무슨소식을 듣고 오신지는 몰라도 냉담까지 했던 이런 사람을 취재할게 뭐 있다고…』「냉담」이란 그의 고백에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67년도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영세하고 곧 결혼 했습니다. 처가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기 때문에 한때 개신교 집사까지 했던 저로선 교회혼을 위해 급하게 교리를 배우고.영세를 한거지요. 결혼후 장인께서 하던 사업이 실패하게면서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신앙에 대한 관심도 차츰 식어 어느틈엔가 냉담길로 접어들더군요』냉담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황해도 송화가 고향인 강씨는 휴전직전 가족들과 월남했다.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그는 67년 결혼후 서울 인천 부산 등지를 전전하다 78년 제주에 정착했다. 그동안 곡절도 많았다. 한의원을 개업할 돈이 없어 월급쟁이 한의사로 설움을 겪기도 했고, 지병인 심장병은 늘 그의 육신을 괴롭혔다.
제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그에게 84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3살 나던 국민학교 6학년 막내가 학교 놀이터에서 사고로 죽은 것이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했던가.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셋째 아들의 주검을 앞에 놓고 강씨는 할말을 잊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픔이 조금은 가실 무렵인 85년 그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심장에 충격을 줘 수술을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모두들 의문이 라고 했어요』.
그러나 그는 살아났다. 이때부터 자식의 죽음도, 자신의 처지도 모두가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죽어나가는 이들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묵상 했다.
퇴원후 그는 새로 태어났다. 덤으로 얻은 삶이었기에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졌다. 고해성사로 냉담에서 깨어났지만 예비자 교리를 3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부족한 신앙의 살을 찌웠다. 교구에서 실시하는 피정이나 교육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 했다. 이냐시오 영성 수련도 받았고, ME와 꾸르실료도 수료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으면서 그는 없는 이를 도우는데 앞장섰다. 진료 중 사정이 딱한 이들의 주소를 알아놨다가 자녀의 학비나 생활비 등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직접 돈을 주고 받는 것이 불편할까 싶어 신협에 통장을 개설, 매달 5명에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또 심도2동사부소를 통해 극빈 가정 두곳을 소개 받아 매달 도움을 주고 있고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작은 예수회에도 매월 10만원씩 지원한다. 신성여고 불우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내놓기도 했고, 성전건립 기금 등 비정기적으로 그가 돕는 일은 헤아리기 어렵다.
『지난 8월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2년전에 영세하셨고 가족들 대부분이 입교했어요.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모두가 하느님의 손길이었음을 느낍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어떤 처지에서든 늘 감사하라』 는 고린토 전서의 말씀을 거듭 되풀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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