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나이 52세. 서귀포에서 태어나 4년간의 서울 유학생할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그곳을 벗어나지 않은 채 사는, 마치 서귀포의 풍경과도 같은 사람. 서양화가 고영우(세바스찬)씨.
화가이면서 그토록 긴 세월을 고향에 갇혀 지낸데는 무슨 사연이 있을법 하다. 사실 그는 16세때부터 시작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심리적 불안증세로 30여년간을 고통속에서 살고 있다.
약한 심장에서 비롯 불안감은 그를 자기집 주변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같은 상태가 67년 홍대 미대 서양학과 4학년 재학중 학업을 포기하고 낙향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건강상태는 그의 예술세계를 완성시켜 나가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반쪽이 상실됨으로 인한 인간적인 자괴감은 예술세계에의 강한 집착과 열망으로 극복되어 갔다.
『70년 영세후 신앙인이자 예술인으로서 구원을 향한 희망과「허무」라는 극단적인 두가지 사고가 저를 지배해 왔습니다. 신앙이으로서 저도 어찌할 수 없는 이 두가지 사고가 늘 부담스럽고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허무란『활짝 피어보지 못한 인간적 좌절, 절망감에 맞딱뜨린 몸부림이자 근원적으로 죽음을 앞둔 인간존재의 암울한 단면』을 말한다. 이러한 허무적 사고는 그가 두고 두고 되씹는 신앙적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신적인 존재앞으로 불안한 자연과 인간의 삶은 결국 미완(未完)』이라는 것이다.
존재의 불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그의 작품속에 그대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그의 작품속에는 풍경이 없다. 그의 관심은 철저하게 인간에로 향하고 있다. 『실존적 삶 앞에서 인간 내면에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의식의 이미지화』라고 그는 설명한다.
지난 84년 어느날, 그는 일상처럼 산책도중에 성당을 찾았다. 종탑을 올려다 보는 순간『저 종을 쳐야겠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 그는 곧장 본당신부에게 달려가 허락을 구했다. 그날 저녁부터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가 서귀동 일대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여년간 고씨의 타종지기 일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종을 치면서 오히려 제가 큰 위안을 얻고 평화를 맛봅니다. 매순간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압박감에 시달리는 저로선 하느님의 음성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해요』.
고씨는 작년 5월 서울 청담동의 갤러리 시몬(대표=김영빈) 개관전에 초대돼 18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한국화단은『기성작가들에 외면당하던 크레파스를 가지고 20여년간 기법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크레파스화 양식을 개척했다』고 그를 주목했다.
중앙화단에서는 첫 개인전이지만 그동안 LA, 파리, 동경등 국내외 초대전에 여러 번 참가했고, 대한미술원전 우수작가상(80), 한일오원미술전 은상(81)등을 수상했다.
다음은 그의 작품세계를 가늠케 하는 일화 한토막.
몇년전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장이 방한했을때 당시 대법원장실에 걸려있던 그의 작품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해 현지 개인전을 주선했으나 작품량이 적어 그룹전에 머물고 말았던것. 『신앙과 예술은 제 삶을 지탱해주는 두가지 축입니다. 제게 신앙은 파안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저의 불안한 삶을 바로잡아주고 구원에로 인도하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명상과 기도가 담겨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그는『말년엔 4복음서등을 소재로 한 종교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영우화백은 지난 7월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서귀포시민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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