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을 남은 남편이라 하나 나는 충우(忠友)라 하느니 만일 득승천국(得昇天國) 하였으면 나를 잊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노라. 세상에서 나를 위한 마음이 지극하였나니 만복(萬福)곳에 거(居)하였을진대 그런중에 고호이(애타게) 붙이려 (전하고 싶어서) 암암이 부르는 소리 귀에 떠나지 아니리니 평일 언약을 저바리지 아니면 이번은 끊지 아닐까 하노라」(이순이 루갈다의 「옥중서간」중).
조숙(베드로) 권데레사 부부와 함께 한국천주교회사에 「동정부부」라는 이름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유중철(요한) 이순이(루갈다) 부부. 신유교난(1801)때 순교한 이들은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고 복음의 권고에 충실한 삶의 원형이라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교회 최초의 동정부부, 부부 순교자라는 영광스런 기록을 남겼다.
20세의 나이에 4년간의 동정부부 생활을 순교로 마감한 이순이는 「한국천주교회 사상 진주라 일컬어 질만한 순교자들」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옥중에서 모친과 올케 친언니에게 남긴 「옥중서간」은 가톨릭여성사에 있어서 주옥같은 규방문학서로서도 손색이 없으며 오늘날까지 한국교회 불멸의 유산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생애
이순이 루갈다는 부친 이윤하와 모친 권씨 사이의 5남매중 세째로 태어났다. 이윤하는 지봉 이수광의 9대후손이며 권일신의 매부였다. 왕손녀(王孫女)였던 이순이는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윈후 어머니 권씨 슬하에서 신서학파의 전통을 형성한 가계답게 전형적 천주교 종교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모친의 종교교육은 후에 오빠 이가를로 남동생 이경언 등 5남매중 세명이 치명하는 순교자 집안을 일궈냈다.
이순이는 어렸을적부터 뜻이 굳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열정적인 마음과 타고난 비상한 총명등 육체와 정신의 모든 자질을 겸비했던 그는 모친으로부터 능력에 걸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4세 되던해 이순이는 주문모 신부를 만난다. 그때 나흘동안 방안에서 성체모시기를 준비할 만큼 신앙의 전통적인 것을 이해한 상태였고 마침내 성체배경의 소원을 이루면서 동정허원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동정부부생활
1797년 이순이는 외형상 유중철 요한과 혼인을 한다. 주문모 신부는 동정으로서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고자 했던 이순이의 뜻을 알고 같은 지향을 가졌던 유항검 가문 유중철과 인연을 맺게 했다. 이때부터 성마리아와 요셉같은 부부생활이 4년동안 지속 되었는데 달레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결혼전이나 결혼후 이순이는 천주교의 덕행을 닦는데 전심하여 시부모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순종, 겸손하고 자비심이 있고 모든 본분을 충분히 지켜 나갔다」고 전하고 있다.
동정 부부생활에 대해 이순이는 옥중서간에서 동정생활을 깨트릴 몇번의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동안에 우리는 열번 가량 유혹을 받아 하마터면 모든것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간구한 보혈의 공으로 마귀의 계략을 피했습니다」.
이들의 부부생활은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고 복음의 권고에 충실한 삶의 원형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형제적 사랑과 하느님 신앙안에서 함께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친구로서의 우정이었으며 세상 물욕과 속된 가치로부터 완전히 벗아나 하느님을 증거하는 순명의 삶이었다.
이순이의 동정생활은 여필종부 칠거지악 남존여비등의 관계가 아닌 대단히 근대적 의식의 남녀평등 관계였다. 옥중서간에서도 나타나듯이 형매(兄妹)간을 넘어 충우(忠友)의 개념으로 서로를 표현할만큼 기존의 유학적 개념을 떠나 있었다.
◆옥중서간
이순이는 신유박해때 시부 유항검이 능지처참을 받은후 시가식구들이 체포될때 함께 옥으로 끌려갔다. 이때 남편 유중철은 교수형을 받고 먼저 순교했는데 그는 옷섶에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위로하오. 천국에서 다시만납시다」라는 유명한 쪽지를 남긴다.
남편이 죽은후 이순이는 벽동읍 관비로 유배형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동정을 깨트릴만한 모욕적인 형에 맞서 관장에게 죽음을 청했다. 마침내 그녀를 1802년 20세 꽃다운 나이에 참수를 당함으로써 천상의 복을 선택했다.
옥중서간은 그녀가 순교하기전 자신의 투옥사실을 듣고 근심할 어머니 올케 등 친정식구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이다. 이것은 박해시대 교우들과 험한산골에서 피신하고 있던 신자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했으며 신자들이 대대로 필사해 가면서 돌려 읽을 만큼 서민신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는 열심한 신심과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표현, 초기 한국교회에 순교의 불을 붙였다 할만큼 정신사적(精神史的)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20세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성숙한, 내면적 사상과 종교적 진리가 잘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문장전체에 가톨릭 교리와 신앙정신 정서 덕행을 뛰어나게 구현하고 있다.
한국초기교회안의 꽃으로 비견되고 있는 이순이 루갈다. 그는 신앙적 덕행과 윤리적 도덕으로서 이땅의 모든 신자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남겨주고 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