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사실은 프놈펜의 감목대리 이브 라무스 주교가 독일 가톨릭통신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라무스 대주교는「이 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2만 명의 가톨릭신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는 바로 지난 7월 2일 20년 만에 처음 가진 첫 크메르인 신부의 사제서품이었다」고 말했다.
비록 지난 1995년 3월 25일에 교황청과 캄보디아 사이에 공식외교 관계를 수립한바 있다 할지라도 이 나라의 가톨릭교회와 정부 간의 관계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현재 방콕의 교황대사 루이지 브리산 대주교가 캄보디아 대사일도 겸임하고 있다. 또한 감목대리 이브 라무스 주교가 1992년 시아누크 국왕에 의해 인정을 받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캄보디아의 가톨릭교회는 아직도「공식적인 지위」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1989년 불교가 국가로부터 정부단체로써 인정받았고 그 다음에 약 25만 명의 신도를 가진 이슬람교가 그 뒤를 따랐다. 1991년 태국에서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라무스 주교에게는「법인단체」로서 인정받는 것이 우선되는 목표이기도 하다. 라무스 주교는「교회로서의 우리의 지위가 빠른 시일 내에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로서는 이것이 공산 크메르 지배시절과 1975년에서 1990년까지 베트남에 의해 세워진 정부시절의 박해와「금지된」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태생인 라무스 주교는 협상마라톤에 있어서는 아주 태연하다. 그는「우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교회는 영원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한다. 라무스 주교는 또한 이 나라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제 캄보디아를 위한 하나의 교회를 갖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주교는 가톨릭신자들이 캄보디아에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려는「크나큰 열정」을 상기시킨다. 아직 성당 건물은 없지만 기숙사를 주교좌성당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매주일마다 있는 두 번의 미사에는 많은 신자들이 참례한다. 라무스 주교는 4백명 이상의 미사 참례신자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제 캄보디아의 가톨릭신자들은 사제양성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 북부 캄보디아의 도청 소재지인 바땀방에 있는 한 신학교에서는 현재 7명의 신학생들이-모두 크메르 출신- 사제직을 준비하고 있다. 라무스 주교는「우리는 물론 지난 7월 2일의 한 크메르 출신의 사제서품을 특별히 기뻐하고 있다. 전국에서 온 많은 손님들로 꽉 찬 큰 축제였다」면서「우리는 이로써 하나의 표시를 세운 것이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회의 새로운 건설을 실제로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라무스 주교에게 있어서 이 같은 일들은 캄보디아인 에비신자수의 증가와 함께 어려운 상황에서의 교회의 희망찬 출발인 것이다. 주교는 또 1975년 공산 크메르와 프놈펜에 진군하기 직전에 방인사제 요셉 크마르 살라스를 주교로 서품했던 일을 기억했다. 「수도의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살라스 주교도 그때 시골로 추방됐었다. 그는 결국 영양실조와 강제노역의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고 회고하며「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한 젊은 크메르인의 사제서품은 우리에게 더욱더 희망이 가득 찬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