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했던 아이들이 내 손길이 닿은 후 깔끔해졌음을 볼때 느끼는 그 「기쁨」을 보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17년째 무료 이발봉사를 해오고 있는 이성기(니꼴라오ㆍ46ㆍ전주 평화동본당)씨.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이성기씨는 가진게 없다. 딸린 3식구와 함께 이슬을 피할수 있는 영세민임대 아파트와 10평 남짓한 이용소 가게 뿐이다. 그래서 나눌게 없다고 생각한 이씨는 퇴근이고 휴일이고 없이 연장가방 하나 달랑 들고 정박아 시설이며 정신병원을 찾는다. 닦은 기술만이라도 나누기 위해.
이용소문을 닫고 저녁에 봉사활동을 나가게되면 이씨의 귀가 시간은 새벽 1시도 좋고 2시도 좋다. 차마 줄서있는 「버림받은 인생」을 피곤함을 이유로 또다시 버려두고 올수는 없는 마음에서다.
『처음 정박아 시설에 봉사활동을 가서 부스럼난 머리를 잡고 손기계로 머리를 깍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성기씨.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시설 수용 아이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었다.
『아저씨도 사진 찍으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보육원 아이들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받으며 당황했던 이씨는 그러나 두번 세번 꾸준히 계속되는 방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게 되었고 허물없는 「친구」까지 되기에 이르렀다.
이성기씨의 봉사활동의 손길은 보육원 정박아시설 정신병원뿐 아니라 이런 시설에 조차 수용될수 없는 소외된 이들에게도 닿고 있다. 매월 셋째 일요일에는 동네 영세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장애자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둘째주에는 평화동성당에 자리를 잡고 시골 노인들과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한다. 말보다 손이 앞서는 불 같은 성미로 죄많은 인생을 살아온 이씨는 74년 JOC운동을 통해 과거를 회개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며 보속하는 심정으로 봉사의 삶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불행했던 이씨의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연찮게 다친 왼쪽 발목이 골수염으로 재발해 절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와중에 가산을 탕진한 이씨는 실의와 재기를 오가며 험한 인생살이를 또 경험하게 됐다.
이런 남편의 외도(?)를 처음에는 이해할수 없었던 부인 김경숙(베로니까ㆍ42)씨 마저 이제는 동네 독거노인 수발, 교통정리 등으로 함께 봉사의 삶을 살게한 이성기씨는 『움직일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봉사하는 것이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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