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맞으며 활짝 웃는 하얀 얼굴이 일흔을 넘긴 나이로는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수줍은듯 약간씩 더듬거리는 말속엔 청순한 미소마저 엿보인다.
20년간 제주도민들과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온 제주 성 이시돌의원 원장 엔다 수녀(골롬반회ㆍ아일랜드인ㆍ71). 1941년 성 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에 입회후 아일랜드 국립의대를 졸업,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그가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전쟁의 신음소리가 곳곳에 남아있던 55년 1월이었다. 엔다 수녀의 한국생활도 올해로만 40년째를 맞는다.
『당시 전쟁의 고통속에 있는 한국에 가서 의료활동을 펴라는 소임과 목포에 처음 도착했어요. 전쟁을 막 끝낸 그 상황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추위가 가장 힘들었어요』.
쓰러져 가는 초가집 한칸만 덩그라니 주어 진채로 환자 진료에 나설려니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의료장비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의약품 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다음날부터 환자를 맞았다.
『어려웠지만 가장 기뻤고 추억도 많은 시절이었어요. 똑같이 어려운 실정인데도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었지요. 그분들을 잊지 못해요』.
목포의 성 골롬반병원이 자리를 잡아가자 그는 춘천 삼척등지로 옮겨 그것에서 의료사업을 전개하다 지난 76년 이시돌의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이시돌의원의 사정도 보잘것없었지만 제주도민들의 생활은 더욱 딱했다.
제주도에 있는 몇몇 병원들은 시설이 형편 없어 어지간한 환자는 모두 육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엔다 수녀는 곳곳에 퍼져있는 결핵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치료해주고 자녀들 학비도 지원해주는 등 무료 인술(仁術)봉사에 온 힘을 쏟았다.
육지 병원을 수소문해 의약품을 구하는 일은 그의 일상사가 됐다. 고향의 친지들이 보내주는 정성은 의원 살림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요즘은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위한 의료보험 카드가 있어서 많이 좋아졌어요. 전에는 무척 힘들었는데 우리 직원들이 참 잘해줘서 가장 고맙게 생각해요』.
엔다 수녀는 매일 오후 2시면 호스피스 활동을 겸한 방문진료에 나선다. 얼굴 한번 찡그리는 일 없이 항상 밝은 미소로 환자들을 대하는 엔다 수녀의 사랑은 요즘 보기드문 깊이와 넓이를 지녔다는 것이 그 모습을 지켜본 이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매주 토요일 교도소를 방문, 재소자들을 격려해주는 일도 20년간 계속되고 있다.
엔다 수녀는 그동안 제2회 여의(女醫))대상(93년)을 비롯해 대통령 표창(77년), 내무부ㆍ보사부장관 감사장, 제6회 교정대상(88년) 등 각종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나환자촌 방문진료로 인연을 맺은 나환자들이 「현애원」이라는 자립촌을 형성한후 보내온 감사패다.
『가족들은 보고싶지 않으세요』. 『보고싶지만 제주도가, 아니 한국이 더 좋아요』.
『한국에 묻히고 싶으세요?』. 『음 글쎄요(웃으며)…주위분들에게 짐이 되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한국에 있고 싶어요』
엔다 수녀는 『의원을 맡길만한 의사분이 계신다면 환자방문과 호스피스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