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일곱. 고령의 나이다. 그러나 고령의 나이도 잊은 채 험난한 중국선교를 결심하고 7월 28일 중국을 향해 떠난 서울 혜화동본당의 「임종자의 어머니」 박정의(아가다ㆍ77세)할머니의 삶은 신앙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지하교회와 애국회로 나뉘어 있는 중국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마지막 남은 여생을 중국교회 신자들의 일치를 위해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93년 8월부터 12월까지 조카(오빠의 딸)를 찾기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조선족 사제로서 연길교구장 서리인 엄태준 신부를 우연히 만난 것이 이번 중국교회 정착의 계기가 됐다고 밝히는 박정의 할머니. 일치와 나눔을 모토로 하는 가톨릭교회가 두 교회로 나뉘어 있는 모습이 못내 가슴 아파 고령의 나이도 잊은채 앞으로 2~3년간의 중국교회 봉사 계획을 세웠다. 박정의 할머니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이번에 정착하게 될 중국 연길 파도구에서 자랐다.
16세때 황해도 해주에 정착, 한국전쟁 발발 전인 1949년 묵주하나 달랑 들고 월남, 22년동안 남한의 곳곳을 누비며 선교사 생활을 해왔던 박정의 할머니는 중국에서는 연길교구 도문 영변 연길 용전 본당을 돌며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중국교회에 레지오와 연령회를 보급하고 예비자 교리를 하게 될 박정의 할머니는 중국에서 열여섯살때까지 살아 아직도 중국말을 유창하게 한다.
23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이 공산당에 입당한 후 종교탄압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서 단신으로 월남, 지금까지 홀로 살아온 박정의 할머니는 『주님의 사업은 금전적인 면과 무관하고 부족한 모든 것은 하느님이 채워주실 것으로 확신한다』며 고령의 나이에 홀로 떠나는 것을 염려하는 이웃들을 오히려 위로하는 여유로움까지 보였다.
전교활동이 법적으로 막혀있는 중국교회에 평신도들의 봉사적 삶과 나눔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에 머나먼 길에 오를 결심을 한 박정의 할머니.
남편도, 자식들도 없이 지금까지 임종자들을 위해 살아왔던 박할머니는 신학생들을 돌보고 불우한 이웃의 어머니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지난 7월 9일은 서울 혜화동본당 「치명자의 모후」쁘레시디움 2천차 주회 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박할머니는 이 쁘레시디움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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