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앙’에 목숨을 거는가. ‘순교’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순교자성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스러져간 신앙선조들의 행적을 기리고, 그 영성을 우리 삶 안에 들이는 데 더욱 집중할 시기다. 올해 순교자성월에는 천편일률적인 일대기가 아닌, 다양한 작가들의 역량으로 새로운 빛을 내는 순교소설들도 만나보자.
최근 초기교회 박해시대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이 소설로 엮여져, 신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가깝게 다가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성인전이나 순교자 일대기 등을 읽기에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권할 만한 문학작품들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뿌리가 된 순교 영성을 주제로 한 명작들은 대부분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faction)으로, 문학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역사적인 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소설들은 단순히 순교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 배경과 과정 등을 재해석함으로써 읽는 이들의 마음 깊이 감동과 가치를 전한다.
역사저술가이자 소설가인 이수광(라파엘)씨는 지난 5월 「조선이 버린 사람들」(지식의숲/1만 2800원)을 발간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조선인들은 무엇을 했으며, 천주교는 왜 그렇게 박해를 받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들불처럼 번져나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밝힌 역사 팩션이다.
「흑산」(학고재/1만 3800원)은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훈(아우구스티노)씨가 펴낸 장편소설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순교한 인물부터 거침없이 배교한 인물, 신앙고백과 배교를 거듭한 인물 등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한다. 순교자 황사영과 배교자 정약전의 삶과 죽음을 한 축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감동한 조선시대 민초들의 이야기 구조들이 세밀하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파격」(다섯수레/1만 6800원)은 중국철학을 전공한 임금자 수녀가 선보인 소설이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를 철폐하는 것만이 모든 백성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는 신념을 실현한 대표적인 이들이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이 책에서는 성 김대건 신부와 정하상 성인 등의 실존인물과 임 수녀가 창조해 낸 인물들을 통해 신앙의 의미와 천주교가 한국사에 끼친 영향 등이 더욱 잘 드러난다.
「새남터」(휴먼앤북스/1만 2000원)는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존경받는 양반이 관노로, 또다시 망나니로 전락하며 겪는 체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일생을 통해 믿음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묵상해볼 수 있다. 개신교 목사이기도 한 영화감독이자 방송인 이무영씨가 쓴 역사소설이다.
총4권으로 구성된 「순교자의 나라」(박도원 지음/예담/9500원)는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등 박해시대, 한국교회사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정하상 성인은 조선교회 재건과 성직자 영입에 일생을 바친 대표적인 초대교회 지도자였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신중신(다니엘)씨는 소설 「강 건너 저편」(바오로딸/8000원)을 통해 이 정하상 성인의 삶과 신앙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동정부부 유요한·이루갈다의 삶과 신앙은 소설가 노순자(젬마)씨의 작품 「누이여 천국에서 만나자」(성바오로/9500원)를 통해 보다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역사소설 「어은동 사람들」(전형민 지음/도서출판 서랑/1만 원)은 이름없는 순교자들의 삶을 절절히 묘사하고 있다.
소설가 고(故) 한무숙(클라라)씨의 장편소설 「만남」(을유문화사/8000원)도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데에는 혁신적인 인물이었으나 배교한 다산 정약용과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며 순교한 정하상의 모습을 두 축으로 박해사건을 그려냈다. 초판이 나온 지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교회 ‘순교문학의 꽃’으로 평가받고 있을 뿐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 폴란드어 등으로도 번역돼 호평받은 역사소설의 백미다.
‘숨은 꽃’이란 뜻의 「은화」(윤의병 신부 지음/한국교회사연구소/상하 각각 8000원)는 병인박해 전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숨어 살아간 신자들의 신앙과 삶을 다뤘다. 선교사들의 서한과 구전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대부분의 내용은 실화에 가깝다. 1977년 제1판이 나온 후 30년만인 지난 2007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새롭게 편집하고 주석도 덧붙인 책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