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일로 우연한 자리에서 젊은 신부님들과 접하는 기회가 몇번 반복되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너무나 많이 들게 되었다.
그 자리는 주로 연세가 드신 선배 신부님과 젊은 신부님, 그리고 그 본당 신자들이 어울리는 자리거나 또는 본당 임원 몇분이 함께하는 자리였는데 서른이 조금 넘은 듯한 신부님이 사오십대 어른들에게 본당 신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반말이 섞인 말로 대하기 일쑤이고 감정이 섞인듯한 빈정거림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미혼여성에게 『야, 너』로 일관한 말투, 심지어는 머리를 쥐어박으며 대답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며 동석하고 계신 윗분 신부님 앞에서의 너무 아무렇지 않은 듯 몸에 밴 그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의아하지 않을수 없었다.
또 한번은 선배 신부님은 처음 대하는 후배 신부님의 본당 임원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시는데 자신의 본당 임원을 마치 부하 다루듯 『나보다 까마득한 선배 신부님이시니까 예수님을 모신다 생각하고 잘 좀 모시라』고 했다. 오히려 그것이 선배신부님의 인격을 깍아 내리는 줄도 모르고 계속 잘 모실것을 강요하는 상황이 조금은 취중이라 과장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또한 은연중에 몸에 배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수 밖에 없을거란 생각을 하니 왠지모를 절망감마저 들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모셔야하는 관계가 교회안에서 왜 존재해야하며 신자들은 무조건 그 상황을 그대로 참아내고 있다는게 화가났다.
오랜 세월 신자들이 신부님을 무조건 떠받들어 모셔야 당연한것 처럼 대해 온것도 문제겠지만 그런 공손한 대접을 받으며 오만불손한 인격의 소유자로 변화되어가는 흔히 말하는 요즘 젊은 신부님들의 모습을 과연 주님은 어떻게 이해 하실수 있을까.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나 겸손함은 이미 잊은지 오래이고 너무 당연하게 신자들에게 군림해도 되는 신부님이라는 아주 매력(?)있는 위치를 마음껏 누리듯 하는 그런 신부님이 하나, 둘 전염병처럼 자꾸만 늘어 가는건 아닌지.
언제까지나 신자들이 그런 신부님을 참아낼지….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신부님들은 신부님들대로 지금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게 비춰보고 가장 작은 주님의 가르침부터 내 모습이 닮아가도록 해야 하는건 아닌지. 입으로만 부르는 신부님이 아닌 정말 존경하는 마음에서 신자들이 신부『님』자를 붙이도록 신부님들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를 올바르게 지키기를 희망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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