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5백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푸른 야자수 아래서 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나라. 천주교 전래 4백여년의 전통속에 국민의 85%가 가톨릭신자인 나라 필리핀. 지난 1월 10∼15일까지 거의 한 주간동안 이러한 나라 필리핀, 그중에서도 마닐라는 「주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자」(Tell the world of his love)라는 노래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으로 넘실거렸다.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세계청소년대회가 열렸고 81년이후 두번째로 교황이 이에 맞추어 필리핀을 방문하게 된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이 기간에는 마닐라 대교구 설정 4백주년기념 행사, 라디오 베리따스 25주년 행사,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25주년 회의 등이 동시에 마련돼 세계청소년대회를 유치한 필리핀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의 길이 모두 마닐라로 통하는듯 했다.
1월 7일 한국대표단 1진과 함께 저녁 10시 40분경(한국시간 11시 40분) 마닐라 니노이 아끼노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그곳의 후끈한 밤공기와 함께 청소년대회 열기는 쉽게 다가왔다. 공항 입국 청사는 세계청소년대회(Wo-rld Youih Day)라는 글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속속 도착하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대표단들로 가득찼고 청소년대회 자원봉사들은 피켓을 들고 마부하이(MABUHAI : 환영)라는 플래카드속에 그들을 맞이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마닐라 세계청소년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마련된 세계청소년대회라는 의의와 함께 풍부한 전통과 문화를 가진 아시아교회의 신앙과 아시아교회 젊은이들의 모습을 세계 교회에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런 취지에서 성청은 한국 주교회의에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고 그로써 비공식 참가자들을 포함, 한국교회 국제대회 참가 사례로는 최대규모적인 2천여명(현지 교포신자 포함)이 마닐라를 찾게된 것이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호주 등 세계 1백여개국 참가단들은 메트로 마닐라내 60개 지역 곳곳에 마련된 학교건물 등을 숙소로 이용했으며 한국은 마카티시 다스메리나스 빌리지 성 아우구스 티노학교에서 스페인 페루 등 스페인어권 참가단들과 대회일정을 함께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를 주제로한 이번 제10차 청소년대회는 크게 국제 청소년포럼 교리교육과 문화활동 교황과의 만남 등을 큰 골격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와함께 「Bario Fiesta」와 같은 개최국 필리핀의 지역문화를 경험하는 행사들도 마련됐다. Bario는 「마을」을 가르키고 Fie-sta는「축제」를 뜻하는 말로서 이는 춤과 노래로 엮어지는 필리핀 고유의 마을 축제를 지칭하는것.
이전의 여러 세계 청소년대회가 개최지역 한곳에만 집중돼 열렸던데 비해 이번 대회는 각국 참가단이 마닐라 곳곳에 분산 배치돼 구역별로 행사가 진행되는 등 지역민들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대회조직위는 이러한 모습을 마닐라대회의 특징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대회진행과 운영면에서 볼때 이번 제10차 세계 청소년대회는 전세계 젊은이들이 교황과 함께 교회안에서 서로의 신앙을 나누고 일치와 믿음의 축제를 거행한다는 대회 본취지는 크게 살리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청소년대회에 관심을 두기보다 필리핀교회와 신자들의 초점은 교황방문에 맞추어 졌고 각국 참가 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앙안에 하나」임을 고백하는 프로그램도 부족했다. 구역별로 필리핀교회 국민들과의 만남은 이루어졌을지라도 청소년대회 참가를 위해 마닐라를 방문한 각국 젊은이들이 한 신앙을 얘기하고 나누는 장은 마련되지 못한것이 아쉬움으로 꼽히고 있다. 외국참가단의 수가 1만여명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청소년대회 참가단들은 필리핀인들의 교황방문 환영행사에 들러리가 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필리핀내 매스컴들도 청소년대회를 다루기 보다는 교황방문과 관련된 사안들만 클로즈업하기 바빴고 대회후에도 교황이 필리핀을 방문했다는 사실과 청소년대회가 잘 끝났다는 자화자찬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참가단들에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것은 필리핀인들이 생활속에 간직하고 있는 신앙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4백여년이라는, 한국보다 앞선 교회전통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안에 있는 믿음의 모습은 신앙을 표현하는면에서 경직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한국 참가자들에겐 참으로 자연스럽게 비춰졌다.
성가에 맞추어 기쁨의 춤을 주고 미사중에도 기리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부르면서 율동으로 그 의미를 표현하는 광경은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민속무용과 전례가 조화된 개막미사의 경우에도 그들의 전통 신앙 생활이 하나로 모아진듯 했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교회 토착화가 늘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눈여겨 보아두어야 할 점이 아닌가 싶었다.
15개 교구가 모여 일주일여를 함께 생활함으로써 교구 본당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리로서도 청소년대회는 한국 참가단에게 나름대로의 의미를 주었다.
한국참가단 운영면에서 있어서도 아쉬운점은 없지않다. 마닐라로 떠나기전에는 적어도 참가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어야할 최종 대회안내서가 일부 교구참가자들에게는 현지에 가서야 전달되는 등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부족했다.
대규모 국제행사 참가가 처음이어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으나 현지에 가서 쏠 태극기가 준비되지 않아 대사관에 가서 빌려오는 등 미숙한 점이 발견됐고 본부운영팀들의 경우에도 이번 대회를 위해 전문적으로 조직됐다기보다는 대부분 직장인들이 봉사차원에서 대회운영에 투입됐기 때문에 조직적인 팀웍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이제 교황과 함께 손을 맞잡고 「주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자」를 불렀던 제10차 세계 청소년대회는 막을 내렸다.
복음전파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황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고 한국에 돌아온 젊은이들에게 교회는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말할 수 있는 동기를 어떻게 부여해주어야 할까.
단순히 세상에 나가 사랑을 외치라고 당부의 말만 거듭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교회의 희망이 바로 자신들임을 알수 있도록 그들안에 무언가를 채워줘야 할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교회와 어른신자들의 몫일 수 있다.
대규모 참가단을 파견해 큰 사고 없이 다녀왔다는 안도감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국제화의 경험을 심어주었다는데 자족할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줄 수 있는 바를 교회가 더불어 찾고 적극 모색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야 노을이 지는 리잘공원에서의 개막미사 철야기도 행사에서의 노숙 교황과의 만남등이 단순한 추억이상의 것으로 한국 청소년들의 거슴속에 영원리 살아 숨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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