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시에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롤롬보이」라는 곳에 도착할수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 농촌을 연상케하는 이곳에는 한국교회와 뗄래야 뗄수없는 중요한 장소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한국교회 첫 성직자인 김대건 신부가 1834~42년 두차례에 걸쳐 중국전쟁을 피해 잠시 피난처로 삼았던 곳, 롤롬보이. 이국땅에서 한국신자들과 교회를 위해 공부하며 망향의 아픔을 달랬던 이곳 롤롬보이를 현재, 한 필리핀 가족이 사재를 털어가며 보존 유지하고 있어 눈길. 그 주인공은 1986년 5월 1일 고 오기선 신부에 의해 자신들의 땅이 김대건 신부 유적지로 밝혀지면서 교구에 땅을 기증하고 성당 동상을 세우는 등 김신부의 유적지 보존에 열성을 쏟고있는 멘도사가족.
1월 14일 청소년대회에 참가중인 한국학생들의 방문을 받은 멘도사 가족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은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필리핀 가문의 이름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성지를 잘 돌보겠다』고 들려줬다.
이들은 현지 마닐라 한인본당의 보조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유적지를 돌보고있다.
1950년경부터 김신부의 피난처였다는것을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자신의 집을 찾으면서 김신부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메도사 가족들은 1986년 김대건 동상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유적지를 돌보기 시작. 당시 땅 소유자였던 고 멘도사 여사는(현주인 로드리고 메도사씨의 모친) 한국측에서 마닐라 대교구 교구장과 상의 성지보존을 요청하고 성지에 동상 건립여부를 요청하자 기꺼이 이를 승락하고 정성껏 성지를 가꾸는 일에 나섰다. 유적지에 와서 한국인들이 마땅히 미사드릴 장소가 없는 것을 보고 개인재산을 털어 성당을 세우기도 했던 그들은 성지보존에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은 없느냐고 묻자 마닐라 한인 공동체에서도 도움을 주고 있어 별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김대건 성인과 같은 한국인은 아니지만 같은 가톨릭 신자로서 성인의 유적지를 돌보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성지를 돌보는 이유를 설명한 멘도사씨는 단체로서 개인적으로 월평균 10여명의 한국인들이 꾸준하게 성지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롤롬보이를 방문하는 한국교회 신자들의 인상을 「매우친절하다」고 밝히는 그는 롤롬보이를 찾는 이들이 김신부의 좋은 신앙과 정신을 배워갔으면 하는게 성지를 지키며 가지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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