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펜을 들었지만 한 줄도 써지질 않는다. 키보드도 두드리다 지우기를 반복, 몇 시간 며칠 모니터 혼자 깜빡깜빡 켜있기 일쑤다.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든 시간을 4개월여 간 흘려보냈다. 창작의 산고 안에서 어느 틈엔가 완성된 단편소설. 창작의 기쁨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 시간,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뭉클해온다. 퇴직 이후 수년을 보낸 이, 환갑을 지낸 이, 이제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만이 남았다고 되풀이하던 이….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것도 더디고, 도전하는 것도 두렵게만 느껴지는 노년기.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며 내심 꾹꾹 눌러둔 의문을 걷어내고, 아마추어 소설가로 나선 시간이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영시니어아카데미(이하 가영시아) 문학반 재학생과 연구생들이 각자의 처녀작을 한데 엮은 창작 단편소설집 「사랑의 묘약」(208쪽/8000원/나이테미디어/각 본당 및 기관단체 공동구매 20% 할인)을 펴냈다. 주인공은 남명희·임옥희·이태경·송진희·윤세균·신미선·노수인씨 등 7명의 늦깎이 문학도들이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가영시아 문학반을 통해 노순자 소설가로부터 책읽기에서부터 소설작법을 배우던 중 ‘작은 예수의 삶’을 공동주제로 소설 쓰기에 나섰다. 신앙과 취미가 같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뿌린 씨는 ‘나이테미디어’(대표 김현옥)의 기획으로 빛을 보게 됐다.
「사랑의 묘약」은 7명의 아마추어 소설가들이 한 주제를 바탕으로 각자 단편소설을 창작, 옴니버스 형태로 묶은 책이다. 이들이 선보인 단편은 ‘하얀 문’을 비롯해 ‘희망의 별’, ‘기억 저 너머’, ‘사랑의 묘약’, ‘꿈꾸는 잠룡’, ‘양철대문 집’, ‘세상에 빛이 되고 싶어’ 등 7편. 성직·수도자들의 원초적 고뇌를 진지하게 다루거나 아프리카 선교사 체험기 형식을 접목한 작품 등 다양성이 돋보인다. 웬만한 기성작가를 능가하는 수준의 소설에서부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담은 작품까지 각양각색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설집 창작은 ‘신앙소설’의 저변을 확장하는 노력의 하나로서도 관심을 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문학과 신앙을 접목해 본다거나 신앙적 소재를 문학이 되게 해보자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글쓴이들 모두가 가톨릭신자로서의 신앙을 바탕으로 숨겨둔 문학적 감성을 끌어냈다.
특히 이 책은 고령화시대,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새로운 창작에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례로 큰 의미를 지닌다.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노인문화’를 창출하는 데에도 힘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하얀 문’을 쓴 남명희씨는 “노년기도 변하는 시간, 변해야 하는 시간, 변할 수 있는 시간”이라며 “노년기에 접어들어 영성의 세계로 보다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운 매개가 바로 글쓰기였고, 특히 신앙소설을 통해 타인들과도 나눔을 이어갈 수 있는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전했다.
소설 창작 지도와 소설집 감수를 맡은 노순자 소설가는 “문학 특히 글쓰기는 마음 속 앙금, 나이 들어서까지 내려놓지 못했던 아집과 상처들을 치유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하는 최고의 예술 장르”라며 “영혼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돕는 문학을 통해 노년기, 새로운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문의 02-745-3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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