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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생물학적이고 역사적인 구조를 가지고 제한된 환경 안에 살고 있는 유한한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론적인 한계는 생명이 결코 인간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드러내며, 또한 인간이 모든 실재의 자율적 지배자일 수 없음을 드러낸다. 나아가 죽음은 생명을 끝없이 유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허약함과 수동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것이며,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보편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죽음은 삶의 일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여 생각하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나면서부터 죽음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죽음의 요소를 느끼지 못할 뿐이지, 삶 안에는 죽음이 이미 깃들어 있다. 그러나 죽음은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의학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해도 과연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만일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피상적이 되고,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없어 책임의식이 없는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이 삶과 더불어 있기에 삶은 더욱 풍부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죽음의 기원을 아담의 범죄에서 연유한 것으로, 죄의 대가로 이해하고 있다(창세 2,17). 따라서 죄는 인간의 본성과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악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즉 때가 차지 않은 죽음은 언제나 생명의 원수인 죄의 대가로 나타난다(2사무 12,16). 반면 성경은 또한 죽음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느님 안에서 맞는 이상적인 죽음은 노년기의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은 인생 목적 성취의 마무리로서 인간이 만나야 할 죽음이지, 어쩔 수 없이 처해야 하는 죽음이 아닌 것이다. ‘장수’와 ‘고령’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 맞게 되는 죽는 순간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인 동시에, 하느님이 지상의 삶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주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 이처럼 죽음은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결단으로서 영원한 삶의 관문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죽음의 모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가정에 생명으로 세상에 오시고 결국 십자가상의 애달픈 죽음을 통해 인류에게 부활이라는 희망을 주셨듯이 우리도 따뜻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할수 있는 아름다운 가정이어야 하고 이러한 가정은 바로 구원의 현장이며 부활의 여정임을 생각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