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 내린 집중호우로 전파(全破), 폐허로 변한 열쇠부대 신교대성당(주임=신광호 신부)을 찾아 수마(水魔)에 할퀸 상처를 달래가며 겨우살이와 성탄준비에 바쁜 장병들을 만나보았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비둘기호로 50여 분 달리면 전곡이 나온다. 전곡은 그리 크지 않은 소도시이지만 인근 연천과 함께 올 여름수해로 전국에 알려지는 달갑지 않은 유명세(?)를 치룬 도시이다.
한탄강을 건너 38도선을 넘어 쉼 없이 달리는 철마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스쳐 지나가는 차창너머로 덤성덤성한 촌노의 이빨마냥 수해로 잔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개 아들이 장가를 간다더라』『누구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타박한다더라』가진 짐만큼이나 객차 안에 잔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아주머니들에게 떠밀리다시피 내렸지만 수해때와는 달리 말끔히 단장된 시가지를 보고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역까지 마중나온 열쇠부대 신광호 신부의 차를 타고 곧장 신교대(신병교육부대) 현장으로 향했다. 한탄강 줄기를 따라 지천인차탄천을 건너자 바로 열쇠부대 신교대가 나왔다. 도로에는 지금도 수해 복구작업을 위해 모래를 가득 실은 군 차량들이 줄을 잇고, 군데군데 미처 철거되지 않은 민가들이 수해 당시의 참사를 증언이나 하듯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교대를 끼고 흐르는 차탄천에도 무너진 제방의 잔해들이 흩어져있어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신병 훈련소인 열쇠부대 신교대 역시 수해 복구 사업이 한창이었다. 수해로 2개월여간 새로 입대한 훈련병들을 교육시키지 못하고 타 부대에 위탁해야만 했던 신교대는 10월 막사를 완공, 다시 훈련병을 받아들여 부대 본연의 임무를 재기했다.
훈련소 시설의 마지막 보수작업으로 위병소를 짓는데 민간업체 인부들의 바쁜 망치질과 시멘트 부대를 나르는 장병들의 손놀림이 쉼없이 오가지만 수해로 완파된 성당 부지에는 말 그대로 폐허로 남아 있었다.
폐막사를 고쳐 성당으로 꾸미면서 신자 군인들이 한탄강에서 주어온 조경석만이, 강물에 휩쓸려온 인근 부대 장병 둘을 구한 채 끝내 거센 물살과 함께 자취를 감췄던 성당의 옛 모습을 반추해 주고 있었다.
수해로 같이 물에 잠겼던 신교대 예배당은 신자들의 도움으로 2억여 원을 들여 새로 착공, 보름전에 헌당식을 갖고 신자들을 모으고 있다. 새로 헌당된 예배당만이 현재로선 열쇠부대 신교대의 유일한 종교시설인 셈이다. 법당도 이미 공사기금이 확보, 내년 봄에 새 법당을 짓기 위해 땅이 녹기만을 기다리며 임시방편으로 은인들이 마련한 천막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다.
군종교구와 군종후원회에서도 이곳 신교대 성당의 조속한 건립을 위해 예산을 충당하려 노력해왔지만 현재로선 여의치 않아 성당 건립을 위한 군 예산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난 여름 가톨릭신문 보도와 청주교구 사제단과 일부 은인들의 도움으로 약간의 성금을 모았으나 공사를 착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애만 태우고 있다.
성당이 폐허로 변한 이후 열쇠부대 장병들은 매주일 오전 9시 부대 식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오전 8시부터 아침식사 시간이라 음식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식탁을 치우고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제법 자리를 꾸며보지만 성이 차지 않는다. 제대포를 깔려고 보면 식탁에 붙어있는 밥풀이 보여 다시 걸레질을 하는데 분주한가 하면, 주례 사제가 목청껏 소리질러 보지만 아침이라 목이 잠긴 탓인지 뒷자리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고 더 큰소리를 질러줄 것을 요구한다.
성당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자 장병들의 사기는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 박경훈(안드레아)상병과 문수원(요한)상병은『식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보니 신앙이 없는 훈련병들이 천주교를 우습게 보는가 하면 한 두 번 미사에 나온 뒤에는 식당 정리가 귀찮아 안 나오는 사병들도 많다』고 조속한 성당 건립을 희망했다.
신교대 부대장 유재홍(헤르메스)중령도『훈련병들의 경우 24시간 통제된 생활을 하기에 이들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고려해서도 반드시 종교시설인 성당 건립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중령은 또『성당으로 인해 타 부대 장병 2명의 목숨을 살렸지만 부하 둘을 잃었다』면서『재임 기간에 성당을 건립해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미사를 전 부대원과 함께 봉헌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식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서글프기보다 괴로운 심정』이라고 토로한 노세영(야고버)상사는『온갖 공을 다들여 성당을 꾸몄는데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이 되고 나니 그 충격에서 여간 벗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교대 성당 신자 장병들에게 늘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다른 동지애가 이들 사이엔 꽃피고 있다. 타 종교에선 매일 많은 신자들이 부대 방문을 하고 위문품을 전달하고 돌아가지만 가톨릭 신앙은 화려함이 아닌 내적인 일치에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예로 12월12일 자로 제대한 신교대 군종병 박영배(요한)군은 군종병 후임이 없자 다시 부대로 복귀해 성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누가 남아 있어달라, 도와달라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박군은 성탄준비에 바쁜 전우들을 둔 채 돌아 설 수 없었던 것이었다.
신광호 신부는『어쩌면 말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같이 음식 냄새가 배어있는 식당에서 성탄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이 하느님의 큰 은총일 수 있다』며『신자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기쁜 성탄을 맞고 내년 부활절에는 아름다운 성전에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군 생활에 더 열심하고 모범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가장 높으신 분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임했던 아기 예수처럼 열쇠부대 신교대 성당 신자 장병들의 오늘의 시련은 분명 값진 신아의 선물로 되돌려 받을 것이다.
※열쇠부대 신교대 성당 건립에 도움주실 분=열쇠성당 신광호 신부 0355-32-2571
농협173-12-120020신광호, 우체국301341-00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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