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군인주일에는 군종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수 있었다. 병영사목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오랫만에 「사람」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농담도 하셨다. 군대야말로 무궁무진한 사목의 텃밭임에도 여러 여건의 열악함으로 여의치 않다는 안타까움에 공감하였다.
꼭 18년전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입대 후 석달 남짓 남해바다 군사도시에서 훈련을 받을 때였다. 지금은 군대가 많이 민주화되어 월등히 편해지고 구타도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때만해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무모한 기합과 체벌이 아무명분과 저항없이 공공연히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어려운 훈련 일정속에서도 주임이면 종교시간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반으로 나뉘어 여기에서만큼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에서 한시간 남짓 「자유」라는 추상개념을 육체와 정신이 함께 실감하곤 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보시던 「성교예규」나 「노인문답」같은 책들을 천주교의 전부로 알고있던 나는 로만칼라에 군복을 입은 군종 신부님이 맞이하는 천주교반으로 들어가 보았다.
나지막하지만 따뜻한 목소리와 다정한 눈길로 그 당시 겪고있는 훈련의 고달픔을 위로하셨고 나는 미사순서며 용어하나 모른 채 대열 맨 뒤에 그냥 않아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언제였던가, 신부님은 천주교반에 모인 우리들에게 우유곽 한개씩을 나누어 주었다. 별 생각없이 받아마셨지만 그날 밤 훈육관과 구대장으로부터 비상소집된 천주교반은 밤새도록 참으로 가혹한 기합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까닭을 알 수 없던 그날의 곤욕은 이른바 장교후보생이었던 우리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지만 그 다음주 종교시간에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우유 한곽에 가져다준 천주교와의 인연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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