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사의 거행자 문제
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 머리와 결합되어 있는 공동체 전체가 거행하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40항). 전례를 거행하는 회중은 세례받은 이들의 공동체이다(같은 교리서 1141항). 그러나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똑같은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특별히 봉사하도록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품성사로써 축성되어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성직자들도 있고 세례를 통해서 부여받은 공통사제직을 수행하는 신도들도 있다. 이들 모두는 교회 공동체의 회중으로서 성사를 거행할 때 모든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과 일치하여 각자의 역할에 따라 전례의 집전자가 된다(같은 교리서 1144항). 그러나 이러한 교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제기되어 왔었던 내용을 성사의 주례자와 배령자로 나누어서 정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주례자 문제 (상)
집전자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된 것은 로마의 대박해들이 끝나면서 부터였다. 네로, 트라야누스 그리고 데치우스(1,2,3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디오끌레씨아누스의 박해(303년 2월23일 시작)로 전 로마제국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근절이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졌을 때 그들은 배교로써 살아남든지 순교로써 죽음을 맞이하든지 둘 중 한가지로 자아표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배교로써 목숨을 부지했고 또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이 순교로써 죽음을 당했다.
명분 있는 배교행위
그런데 이 양자 택일의 상황에서 추후 문제로 대두될 일이 생겼다, 배교의 표시로 성서의 사본을 관청에 헌납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실제로는 성서를 보존하기 위해서였고 또 그렇게 한 것도 진짜 성서의 사본은 감춰두고 비그리스도교 서적들만을 헌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외적으로야 배교한 것처럼 보였으나 내적으로는 성서와 신앙 그리고 목숨을 다 같이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이 박해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후 311년 갈레리우스가 그리스도인들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공식적인 박해가 끝나고 교회 내부에서의 정비가 시급해지자 우선적으로 교계제도의 재건설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는데 이때 앞에서 언급한 그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데치우스의 박해기간 중(주후 249~251년)에 소위 「랍시」문제 즉 허위로 배교행위를 했던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논쟁을 했던 일, 그래서 교회가 양분된 것처럼 보인 적도 있었다. 따라서 겨우 60년 전의 사건을 모를리 없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갈레리우스의 칙령 이후 거론되기 시작한 그 문제를 첨예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럴 즈음에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터졌다.
디오끌레씨아누스 박해 당시부터 카르타고의 주교는 멘수리우스였다. 그는 박해 중에 소위 명분이 있는 「배교행위」를 했다. 거짓으로 성서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박해가 끝나자 그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를 가장 심하게 비난한 사람은 세꾼두스였다. 그런데 얼마 후 멘수리우스는 사망하고 그 후계자로 체칠리아누스가 주교로 성성되었는데 그를 성성시켜 준 사람인 펠릭스도 마찬가지로 이른바 배교행위를 한 사람이었다. 그러자 세꾼두스와 동료 비난자들은 그 성성식이 무효라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멘수리우스의 후계자로 마요리우스를 성성시켰다. 그리하여 카르타고에는 두 명의 주교가 있게 된 셈이다. 이렇게 되자 사건은 이제 서품의 유효성 문제만이 아니라 그와 연결지어지는 문제 즉 배교한 인물이 베푸는 세례의 유효성 문제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문제는 얼마 후 마요리우스의 후계자가 된 도나뚜스 주교가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심적인 부분에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었고 또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이들이 활기있게 활동하게 되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자 그들을 반대하는 이들과의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들을 반대했던 유명인사가 다름 아닌 성 아우구스띠누스였다.
행위자의 주관적 인품
도나뚜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주장은 사제적 행위의 유효성은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인품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배교자로 낙인이 찍힌 사람에 의해서 성성된 사람은 성직을 수행할 수 없고, 그를 따르는 신자 공동체는 하느님의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도나뚜스주의자들은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재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도나뚜스주의자들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힙뽀의 주교로 부임하게 된 아우구스띠누스와의 논쟁은 필연적인 것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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