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척추암으로 너무 고생하셔서 우리 팔남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고 가셨지만, 어머니의 병고와 더불어 그 동안 하느님께 멀어졌던 영혼들은 다시 돌아오고 우리의 신앙은 성장했다. 마치 금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나의 성화 때문에 억지로 영세하고 냉담하던 동생이 지금은 교리교사 활동을 하고 있고, 순경 부인인 막내 여동생은 두 딸과 함께 성탄 때 영세했다.
나의 형제 자매 중에 아직도 신앙의 여정에서 방황하고 멀리 떠난 이들도 있지만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믿음으로 그들의 회개를 빈다.
때때로 삶 안에서 모든 것이 헛수고처럼 보이고 잃어버린 것 같이 보여도 가장 가까운 우리의 이웃, 가정에서부터 지구촌 한 모퉁이에 사는 이웃에게까지 사랑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한결같으며 구원의 희망이 포기되지 않기를 원한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의 선교사로서 콜롬비아에 파견되어 왔다. 내가 머물고 있는 우리 작은 수도공동체는 이 나라 제2의 도시인 메델린(Medellin)에서 22㎞ 떨어진 칼다스(Caldas)라는 어느 마을 같은 도시이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는 옛날 철도 좌우로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들이 달리고 있다.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손에는 연줄을 쥐고 공중으로 힘차게 연을 날린다. 바람을 타고 울긋불긋 아름다운 연들이 유성처럼 위로 높아만 간다.
한 아이가 코를 훌쩍거리며 뛰어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우쭐대며 인사한다. 「에르마니따!」(Hermanita: Hermana의 작은 말로서 수녀 혹은 자매로 사용되는 말) 「에르마니따 챠오!」(수녀님 안녕)하면서.
종이에 면실만 달아 연이라고 좋아라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들도 덩달아 아는 체 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얼굴들, 이곳에 온지 5개월도 안되었는데 나는 아주 정이 들어 버렸다.
우리는 어떤 자선가에 의해 가난한 미망인들을 위해 세워진 집들 중에 하나를 얻어 살고 있다. 공동체 가족은 원장수녀인 프랑스인 안토니아, 콜롬비아 자매인 수련자 로사 그리고 한국 사람인 나, 모두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사도직은 신설 중인 성당에서 한 사제와 일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인 원장수녀님과 나는 반쯤 알아듣는 언어로 교리, 성서공부, 봉성체, 제의방 일과 본당사무장 일까지 우리 좁은 집안에서 겸임해야 한다. 하느님 하시는 일은 다만 놀라 울 뿐이다. 우리 작은 공동체의 언어는 만국 공통어이다. 왜냐하면 이곳의 언어인 스페인어로 대화가 되다가 불어로 마치기도 하고, 스페인어에서 라틴어로, 급하면 한국말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통된 「신앙」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언어이며 국적과 시ㆍ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이고 영원한 일치의 언어다.
의자 네 개가 겨우 들어가는 경당에 앉았다. 감실 안에 현존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토록 찾고 추구하던 「진리」,성부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신비」 안에서 성신의 빛으로, 참 자유, 참 구원의 행복을 만났다.
바로 이 분, 시작이며 끝이요, 알파며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태초부터 구원의 부르심을 받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