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년에 입국, 대구 가톨릭 근로자 회관 관장과 영남 노동교육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봉사에 헌신해 온 박기홍 몬시뇰(65ㆍ오스트리아인)이 최근 교구 사제인사에서 근로자 회관 고문에 위촉되면서 사실상 그 동안 몸담았던 현직에서 떠났다.
『일복도 있었지만 인복(人福)도 많았던 것 같다』고 짧게 소감을 대신하는 박 몬시뇰의 얼굴엔 잠시나마 한국에서 만났던 많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스쳐 지나간다. 『지난 70년 8월 입국할때만 해도 5년간만 살고 간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것이 10년, 15년 되더니 이젠 만 26년째 살고 있습니다.』
박 몬시뇰은 내년 1월경 영구 귀국한다. 귀국을 1년이나 앞두고 이루어진 인사가 좀 빠른듯한 느낌도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올 봄에 새 건물 입주를 앞두고 새로 오시는 후임자가 책임을 맡는 것이 여러 모로 타당하다고 생각해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온 후 73년 영남 노동교육원을 설립하고 75년 대구 가톨릭 근로자 회관을 신축해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상담에 나섰다. 노동조합 간부 및 조합원 교육, 노동대학 강좌, 노동법교실 등 다양한 근로자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당시 노동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한 때였다.
뿐만 아니라 노사문제 간담회와 토론회 임금심포지엄 등을 개최해 지역사회 내에서 원만한 노사관계와 근로자 의식 고양에 크게 기여해 왔다.
『영남 노동교육원을 세울땐 교회가 사회속에서 소금의 역할을 해야한다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신자들끼리가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문을 열어주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주변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자는 것이지요.』
근로자 회관이 지역 주부들과 미혼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및 복지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설립 취지에 따른 것.
그의 공로는 수 차례에 걸친 수상경력에서도 드러난다. 박 몬시뇰은 78년 문교부 장관 표창을 시작으로 83년 대통령 표창, 91년엔 대구 사회복지 대상, 92년에 노동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92년에 명예 대구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박 몬시뇰은 귀국 후 작은 본당을 맡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아울러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소개하는 작업도 계획중이라고 말했다. 영어나 불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은 꽤 있지만 독일어로 된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2명의 독일인과 공동작업 할 예정이며 현재 양국 출판사와 교섭중에 있다.
『「제2의 고향」이란 말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한국과 특히 대구는 저에겐 제2의 고향인 셈이죠.』
요즘도 대학 강의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는 그는 유럽사회의 경우를 예로 들어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간 새로운 계급(층)이 생기지 않도록, 또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추세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연대감, 공동체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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