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1층 접수대 앞에서 방명록에 서명, 「주님 따라 가는 길, 십자가 길, 부활의 길」이라고 적어 때마침 사순절을 맞아 시작된 이번 순례가 고통을 이기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되길 바라는 염원을 전했다. 이에 앞서 도착한 최창무 주교는 『오늘의 행사가 순교의 영성에 불을 지피고 순례 영성의 시발이 되기를 빕니다』라고 적어 시성 이후 식어있는 순교자 신심이 활성화 되기를 염원했다.
○…김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주평국 신부가 김대건 신부와 얼굴이 매우 닮았다』며 『일정 중에 김 신부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채 걷는 코스를 집어넣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 참석자들의 박수와 웃음을 자아냈다. 나중에 주 신부는 이에 대해 『적극 검토해 보겠다』면서도 『도포는 걷기가 불편할 텐데 김 신부님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
○…김 추기경의 수원교구 최덕기 부주교 서품식 참석 관계로 미사 후 거행할 예정이었던 출발 기념식을 간소화해야 했다. 주최 측은 당초 15분에서 20분 정도의 기념식을 간결하고 산뜻한 이벤트로 치를 예정이었으나 아쉽게도 정성껏 준비한 기념식을 대폭 줄여야 했다. 하지만 김 추기경은 주 신부와 가톨릭신문사 최정근 기자를 포함해 전 코스를 함께 걸어갈 6명의 순례자들을 안수, 이들의 장도를 축복했다.
○…이번 순례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다, 미사 후 언론사 사진 기자들은 추기경과 전 코스 참가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청, 그러지 않아도 일정이 바쁜 김 추기경의 애를 타게 하기도. 사진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는 명동성당까지 1시간여의 도보 내내 따라오면서 촬영을 하고 일부는 옛 용산 신학교까지 쫓아가기도.
○…성당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주 신부 등과 함께 선두에서 걷던 추기경이 행렬에서 빠져나가자 이를 본 많은 신자들이 열렬히 손을 흔들며 함께 걸어준데 대해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히 어린이들은 추기경의 차가 떠난 후에도 한참동안 손을 흔들어 추기경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참석자 중 올해 79세의 박상목(요셉 바오로)할아버지는 가톨릭신문을 30년 동안이나 구독해온 애독자.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강단이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김밥 도시락까지 싸와 옆구리에 찬 채 커다란 목소리로 주위를 독려하며 걸었고 시간이 나는 대로 다른 코스 참석을 하겠다며 전 코스 일정표를 복사해가는 열성을 보였다.
○…순례 참가자들이 걷고 있는 도로변에는 신자들로 보이는 택시, 자가용 등이 경적을 울리며 환영, 추운 날씨에 걷고 있는 주 신부 일행에게 힘을 더해주고 있다. 또 이번 성지순례가 시작되는 첫날부터 26일 현재까지 서울에서부터 매일 출퇴근(?)하며 참가하는 이들도 있어 이번 순례에 호응을 짐작케 하고 있다.
○…순례행렬의 맨 앞은 아이들 차지. 길게 매단 깃발을 흔들며 힘차게 걷는 어린이들을 보며 주 신부는 『이 아이들이 바로 소년 김대건이고 소년 최양업』이라며 흐뭇해했다. 이날 행사에는 여러 명의 수녀들도 함께 참석해 순례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3백여 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1시간에 걸쳐 명동성당까지 함께 걸어온 최창무 주교는 지하성당 참배에 앞서 『걷는 것이 힘들었지만 걷고 싶어도 못 걷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걸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문사 최영수 사장 신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의 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며『아울러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국 도보 성지순례를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도보 순례 이모저모
미지근한 순교신심 다시 불 붙여
1천리 도보 순례 대장정“출발,,
차량경적 울리며 동참
전 구간 순례자 축복도
발행일1996-03-03 [제1992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