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성 근육마비. 차츰차츰 온몸의 근육에 힘이 빠지고 결국엔 옴짝달싹도 못하게 되는 희귀한 병이다. 추미선(크리스티나ㆍ31)씨는 진행성 근육마비 1급 장애이다.
혼자선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다. 사지가 붙어있지만 마치 남의 몸뚱이인 것만 같다. 정상인이 몇 발짝이면 될 걸음을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기어가야만 한다.
추씨의 남편 박인호(베네딕도ㆍ33)씨는 두 다리가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초등학교 3년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21살 되던 해 두 다리를 절단했다. 복부 장파열, 척추손상, 욕창에다 골수염까지. 박씨가 걸어온 길도 참 기구하다 싶다.
『88년 초 좌천동의 한 재활원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두어 달간 입원한 뒤였지요. 욕창이 심해 수술을 했다더군요.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다만 외로움이랄까 고독감이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1년간을 오빠, 동생하며 지냈다. 지체장애의 아픔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 틈에 동반자가 됐으면 하는 감정이 자연스레 싹텄는지 모를 일이다.
『한 번은 「시집 안 가느냐」고 물어요. 「누가 데려가겠느냐」고 답했지요. 그랬더니 「내가 데려가지」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짧은 대화였지만 서로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들은 89년 7월 15일 부산 연산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았다.
결혼 이후 장애후유증으로 매년 한 번꼴로 병원신세를 져야 하는 박씨를 곁에 두고, 점점 스러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는 추씨의 심정은「죽음보다 못한 삶」그것이었다. 남편이 입원하고 홀로 남겨진 방에서 추씨는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왜 내가…….』.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인간적인 좌절과 고통들도 95년 1월 삼위일체 수녀회의 헬렌 수녀(스위스인)를 만나면서 조금씩 바뀌어갔다. 『몸집이 크신 분이 좁은 욕실에 구부리고 앉아 제 발을 씻기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해 6월, 이들 부부는 큰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주위의 몇몇 장애인들과 함께 기도모임을 만든 것. 『현실을 극복하고 장애인들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 유익한 일을 찾아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자립을 위한 공동체「은총의 샘」은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 박씨 집에서 갖던 모임도 96년 12월부터 태종대성당 만남의 집에서 매월 셋째 주일 모이고 있다.
박씨 부부뿐만 아니라「은총의 샘」회원들 모두에겐 커다란 꿈이 있다. 바로「장애인 자립관」을 세우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회가 우리 같은 장애인들을 위해 자립의 길을 보장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수익과 혜택이 장애인들에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자립관을 세우는 것이 꿈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이들은 안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립의지를 불태우고 적극적이고 도전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욱 소중한 동기다.
이들 부부는 생활비를 아끼고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지금 8백여만 원을 모았다. 그나마 전세방이라도 얻어 자활작업장으로 쓰려면 3천여만 원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은총의 샘 회원은 30여 명. 이들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김마리아 수녀의 지도로 매주 한 차례 성서모임도 갖는다. 후원해 주는 이들도 50여 명 된다. 그러나 모두들 어려운 형편. 그래서 독지가나 협력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희 부부는 건강상 정상인 보다 실패할 시간이나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날까지 열심히 남아있는 삶을 위해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은총의 샘 연락처=(051)403-7655, 국민은행 110-21-0743-541, 농협 923-12-287682(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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