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전교주일을 기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 아기의 데레사 성녀를 교회박사로 선포한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교회박사 칭호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등 두 분의 교회박사에 이어 여성으로는 세 번째 갖는 칭호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은 자 하찮은 자로 불리기를 원했던 소화데레사 성녀에게 부여되는 박사 칭호. 왜 교회는 데레사 성녀에게 교회박사, 학자의 칭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교회박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외신을 통해 알아본다. 내용은 알기 쉽게 문답식으로 풀었다.
-교회학자란 어떤 것인가? 연구하는 사람이나 논문 등으로 박사 자격을 얻듯이 무슨 특별한 자격을 얻는 것인가?
▲시성된 성인 가운데서 그가 남긴 글이나 저서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성인에게 교황이나 공의회가 교회학자로 공적으로 선언함으로써 교회학자가 탄생하게 된다. 지금까지 교회학자는 거의 남성이었는데 요즘에 와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성녀 가타리나 두 분의 여성이 교회학자로 선정됐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는 여성으로는 세 번째가 된다. 교회학자가 돼서 얻게 되는 자격은 미사나 성무일도 등 전례에서 교회학자로 기림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교회학자 선언에서 겨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가르침, 메시지를 보편적 권위로써 인정했다는 무게를 주는 것이다.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의 경우 「자서전」을 읽어도 특별히 어려운데는 없다. 가르멜회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고 별로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학자라는 칭호가 데레사 성녀의 경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학자로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은 「학자」라는 칭호에 대한 이미지의 문제라고 본다. 옛사람들은 영리한 어린이들의 장래를 「학자」나 「장관」으로 기대하기도 했는데 일반적으로 「학자」라는 말에는 우수한 두뇌나 고학력 입신출세에 성공한 자라는 인상이 짙다. 이러한 이미지로 본다면 데레사에게 교회학자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녀는 자신을 「작은 자」 「하찮은 자」라고 온 생애 동안 계속 말해왔다.
『나는 들녘의 아침이슬과 같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사람들에게도 보여지지 않고 곧장 사라지고 맙니다. 이슬을 보는 이는 하느님뿐, 하느님께만 보여지는 아침이슬처럼 되고 싶습니다.』고 한 성녀의 말도 있지 않은가. 『끝까지 작은 자이고 싶습니다.』 이것이 성녀 데레사의 영성의 특징인데 모든 이에게 우러러 보이는 교회학자라는 이는 성녀 자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황이 데레사를 교회학자로 선언하는 것은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와 영성에 뛰어난 빛이 있음을 모든 이에게 보증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고 본다. 겸손한 데레사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칭송받는다 하더라도 무력한 어린이라는 자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와 영성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빛과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성녀 데레사의 메시지는 학문에서 온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학력이 없다. 훌륭한 학문적 논문도 남기지 않았다. 가르멜 수녀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 앞에서 이야기 한 적도 물론 없었다. 그가 남긴 것은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면서 쓴 공책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성녀 데레사가 사용했던 공책의 매력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나약함, 무력함을 신앙의 빛으로 하나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기록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 데레사는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를 대신해 주던 둘째 언니에 이어 맏언니마저 가르멜에 들어갔다. 계속되는 이별을 체험해 마음의 동요를 느낀 데레사는 균형을 잃고 무너져가고 있었다. 데레사는 이별을 자신을 부축해주는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만 받아 들였다. 이런 유년기의 체험에서 그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했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나약함은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낫지 못하리라고 확신하고 그 사랑을 찾는데 인생의 삶을 집중시켰다. 사랑을 필요로 하고 사랑으로만 평온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사랑 없이는 빛나지 못하는 인간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데레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찾았고 오로지 그분 안에서 자신을 벌거벗고 위탁하려고 했다. 그리고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에만 온 삶을 바친 데레사의 생애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유는 데레사의 과제가 모든 인간에서 공통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데레사 메시지의 보편적 울림이 있다.
-21세기를 몇 년 뒤에 맞이하려는 이때 데레사가 교회학자로 선포되는데 시대적 의미가 있는가?
▲시대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데레사의 메시지를 본다면 이미 그가 살아온 시대에서도 데레사의 신앙생활은 매우 특유한 것이었다. 19세기 말의 프랑스 교회에는 아직도 얀세니즘의 영향이 깊이 남아 있었다. 얀세니즘이란 당시의 부패된 교회를 쇄신하기 위해선 각자가 거룩하게 되어야 하고 그 때문에 엄한 억제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열심한 수녀들은 솔선하여 엄한 고행과 희생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데레사는 작은 존재에게는 고행도 희생도 맞갖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버리는 신뢰야말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확실한 길이라 단언했다. 『이층에 간 어머니를 찾아 우는 애기처럼 행동하면 된다.』고 데레사는 대담하게 잘라 말했다. 어머니를 찾아 우는 애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내려와서 아기를 안고 이층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작은 존재가 드리는 신뢰로 가득찬 필사적인 기도에 달려오시어 천상으로 데려가신다. 자비하심에 대한 신뢰에 철저해야 된다고 하시며 단순한 신뢰를 중심에 둔 데레사의 신앙생활은 그 당시에 행하던 복잡하고 엄한 신앙생활에 얽혀 있던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데레사의 단순한 신뢰의 길은 수험, 진학경쟁으로 그리고 엄한 관리 교육의 무게 속에서, 또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숨넘어가게 되고 질식하게 된 현대인에게 회복의 길을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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