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맞은편 세브란스빌딩 앞 지하도에서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 9시가 되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2백 평 안팎의 행려자들이 4열 종대로 줄을 서서 기도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서울 상봉동본당 빈첸시오회 소속 박대성(48세ㆍ바르나바)씨와 그 동료들이 행려자들에게 저녁을 제공하기 직전의 장면이다.
식사 전 기도가 끝나면 「아멘」하는 합창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며 배식이 시작된다. 숟가락과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하나씩 받아들고 쌀밥에 소고기 국, 김치를 차례대로 받아드는 행려자들 중에는 낯 익은 봉사자들에게 「국을 더 달라」 「하느님께 감사!」라는 말로 친근감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1시간여에 걸친 배식이 다 끝난 후 뒤늦게 나타난 행려자들에게는 인근 수퍼로 가서 빵이나 라면을 사 주고 지하도 바닥을 정리하고 나면 어느새 밤 11시를 넘기기가 예사다.
이 같은 지하도에서의 봉사활동은 행려자 및 불우 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제기동 경동시장 내 빈민식당 「프란치스꼬의 집」에서 3년째 봉사하고 있던 박대성씨가 지난해 9월부터 프란치스꼬의 집이 쉬는 주일과 수요일 중 짬을 내 서울역 지하도에서 행려자들에게 김밥을 나눠주면서부터 시작됐다. 『한 달여 동안 지하도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행려자들에게 김밥을 나눠 주다 보니까 귀가 시간이 밤 1시를 넘기는 등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라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박씨는 그 후 빈첸시오 회원들과 주위 친지들의 도움으로 지금과 같이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행려자들에게 저녁을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1년여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두 차례씩 만나는동안 행려자들과는 면담을 통해 치료시설이나 불우시설을 소개해 주고 취직도 주선하면서 자연스레 행려자들의 벗이 되고 있는 박씨는 『식사하러 오는 행려자들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고 있다』며 걱정이다. 1년 전 처음 시작 때 김밥 70명 분으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평균 2백50명이 찾아온다는 것.
2백50명 분의 두 끼니 식사를 위해서는 80Kg 들이 쌀 한 가마니와 김치 50단으로도 모자란다고 한다. 쌀과 소고기, 김치거리 마련은 박씨의 몫이다. 식당이나 청량리 시장 야채 장수 베드로 아저씨로부터 무, 열무 등 야채를 얻어 와 절약에 절약을 거듭하지만 한 달 평균 경비가 1백만 원은 족히 소요된다고 한다.
박씨의 삶은 빈민 식당에서의 봉사활동과 지하도의 행려자들이 먹을 밥과 반찬 마련에 동분서주하는 바쁜 가운데서도 주위의 무의탁 노인들이나 불우 이웃을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생계를 돕는 일과의 반복이다.
박씨의 이 같은 사랑 실천의 삶은 30년 냉담생활을 청산한 이후 항상 기도하는 생활에 몸이 배인 것이 원동력이 되고 있다. 새벽 5시 기상해 성당까지 걸어가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미사 참례로 시작해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생활을 되돌아보고 이튿날 복음 말씀을 미리 묵상하는 일과의 되풀이다.
『열한 살 때인 1960년 영세 후 30년동안 냉담하며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밑바닥 인생의 아픔과 서러움을 직접 겪었기에 행려자들을 돕는 일에 나서게 됐다』는 박씨. 수 년 전 개신교 신자였던 부인의 영세와 더불어 조당을 풀면서 오랜 냉담생활을 청산하자 10여 년동안 그렇게도 잘되던 사업이 신통찮아지자 사업을 포기하고 아예 전업봉사자(?)로 나서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 벌어놓았던 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상봉동본당 빈첸시오회에 가입하고 프란치스꼬의 집에 봉사자로 나선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박씨는 가정에서도 조그만 여유돈만 생기면 『저 돈이면 행려자 몇 명을 먹일 수 있는데…』라며 자나깨나 행려자를 생각하느라 『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인색하냐』는 부인의 불만을 듣게 된다고 털어 놓는다. 한마디로 『남편으로서는 빵 점』이라며 열다섯 살 난 딸아이 (중2)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친다.
『저도 욕심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박씨는 『직업이 있지만 잠자리가 없는 행려자들을 모아 그들을 자립시킬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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