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골 신학교는 그 역사가 비록 2년 밖에 안 될 만큼 짧지만 한국 천주교회가 박해 시기에서 종교 자유의 시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사제 양성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재단법인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 최석우 신부는 이처럼 한국천주교회의 전환기에 사제 양성의 요람이었던 부엉골 신학교 터가 교회사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한국교회 신학교의 뿌리인 만큼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본보 7월 27일자 제2063호 1면에「부엉골 신학교 터 쓰레기 매립장화」기사를 보도한 가톨릭신문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의 석학 최석우 신부로부터 부엉골 신학교 터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성직자 양성」문제는 가톨릭교회의 최고 사업 중 하나이다. 파리외방전교회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도 첫째 사업이「한인 성직자 양성」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은 한인 성직자들이 배출돼 교회를 맡아야 박해 중이라도 교회가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예로 모방 신부가 입국하자마자 즉시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을 신학생으로 선발한 것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최석우 신부는 이처럼「사제양성 문제」는 가톨릭교회 자체 뿐 아니라 한국에 진출한 파리외방전교회의 첫 사업이자 주력사업이었다고 설명했다.
박해기간 동안에는 국내에 신학교를 세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국외로 신학생들을 보내 사제양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바로 김대건, 최양업 신부가 그 경우이다.
◆한인 성직자 양성 위해 설립
철종 연대 평온시기를 틈 타 1855년 충북 제천 배론에 처음으로 신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그동안 다블뤼 신부를 비롯한 파리외전 선교사들은 박해로 인해 한 장소에 정착할 수 없어 신학생들을 복사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시켜 왔다.
배론신학교는 10년간 신학생을 양성했지만 시일이 짧아 성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다시 박해가 확산되면서 폐쇄되고 말았다.
이후 10년간 다시 파리외전 신부들은 신학생들과 함께 거처를 옮겨 가면서 신학 공부를 가르쳤다.
◆박해 때 천혜의 피신처
1880년대 들어 신학생들이 페낭신학교로 유학을 떠나지만 기후 때문에 실패하고 귀국하고 만다. 그래서 1885년 부득불 국내에 다시 설립된 것이「부엉골 신학교」이다.
최석우 신부는 부엉골 신학교 터는 박해시대「천혜의 피신처」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앞이 막혀 있고 뒤가 터져 있어 박해시대 교우촌과 신학교 터로서는 안성맞춤이었을 뿐 아니라 바로 옆에 한강 본류가 흘러 배를 이용해 재빨리 피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87년 종교 자유 후 폐쇄
그러나 천혜의 자리였던 부엉골 신학교도 1886년 한불조역이 이뤄지고 1887년 종교 자유가 비준 받자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2년 역사 불구 중요성 커
블랑 주교는 종교 자유로 더 이상 깊은 산골에 신학교가 있을 필요가 없기에 도시에서 신학교를 발전시켜야 한다며 부엉골 신학교를 폐쇄시키고 말았다. 이로써 부엉골 신학교는 2년간의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최우석 신부는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박해시기 한국인 성직자 양성문제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처럼 오늘날 그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문제도 그 역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로 이어져
「부엉골 신학교의 역사가 2년 밖에 안 됐지만 바로 예수성심신학교의 효시이며 그 역사는 오늘날 가톨릭대학교로 이어져 내려 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부엉골 신학교 터는 전환기의 터라는 점에서 또 그 자리에서 신학생들이 종교 자유를 맞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신학생 산 교육장으로 활용돼야
최 신부는 이 역사의 현장이 보존돼 신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신부는「예비 신학생들을 부엉골 신학교 터와 같은 역사의 현장에서 신학생 양성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신부는 또「그나마 빈약한 교회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고 피력하고「밝혀진 교회 문화유산만이라도 확보하고 보존하는데 전 신자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터 매입가 2억여 원
「하루 빨리 부엉골 신학교 터 확보가 급선무」라고 강조한 최우석 신부는「신자 독지가나 은인들이 나타나 신학교 터를 매입, 수원가톨릭대학 등 신학생 양성기관에 기증하는 뜻 깊은 일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부엉골 신학교 터 매입가는 대략 2억여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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