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닛산자동차와 토지문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우토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천주교인권위원회 박기호 신부가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한국 인권단체협의회 우토로 토지문제 조사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조사단은 방문 기간 중에 우치시와 동경부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주민들과 함께 시위를 하는 등 짧은 기간동안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가톨릭신문은 강제 징용 조선인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촌인 우토로 마을의 토지 분쟁과 관련 지난해 7월 일본 현지로 기자를 파견 대대적인 보도 (96년 7월 28일자 18면)를 한 바 있다. 박기호 신부의 이번 방문기를 게재하면서 투쟁을 펼치고 있는 우토로의 조선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한 국내에서의 움직임을 기대해 본다.
방일 조사단의 4박 5일은 충분한 일정이 아니었으므로, 「우토로」마을에 도착함과 동시에 우리의 활동은 시작되었다. 마을 회관에 들어서자 금방 주민 대표들과「우토로 지키기 모임」임원들이 속속 들어 왔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도 아주 오랜 이웃들처럼 느껴졌다. 7년동안 끌어 온 토지 분쟁 재판의 경과와 마을 형성의 약사를 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우토로 토지분쟁 문제는 이런 것이다.
경도부 우치시 변두리에 있는 우토로는 1941년 태평양 전쟁에 이용될 일본군 야전비행장을 건설하려고 조선인 농민들을 건설 노동자로 동원하면서 시작되었다. 통지서를 받고 면사무소에 들렀다가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못한 채 그 길로 일본으로 끌려 온 분도 있었고、징용을 면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자발로 지원한 사람도 있었는데 주로 소작 농민들이었다. 2~3백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돌과 바람뿐인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함바(밥집)에 기거하면서 매일 새벽 6시부터 14시간씩의 중노동을 했다. 건설 도중 종전이 되자 대부분은 고국으로 돌아갔으나、미처 귀국하지 못하고 눌러 앉은 이들이 오늘까지 살아 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79세대 3백80명이 살고 있다. 그런데 황무지였던 땅이 이제 주택지가 되자、본래 토지 소유주인「닛산 자동차」측이 1987년 주택 철거와 토지 반환을 요구하므로 재판에 계류된 것이다.
25일 2백50여 명의 주민들은 마을회관 마당에서 반대 집회를 가진 후 4개의 고성능 스피커를 단 봉고차와 풍물패를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며 닛산자동차로 행진、1시간 가량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친절히 안내하였고 1백여 명의 일본인 대학생들과 보도진들이 시종일관 진지하게 참여하였다. 26일 밤에는 주민 회의가 있었는데 『피와 땀을 뿌리며 50년을 살아 온 땅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가 대단했으며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 정부에게 우토로 문제에 관하여 발언해 주기를 간절하게 호소하였다. 소유주에게 가능한 최소한의 보상도 하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단결과 물러서지 않는 끈질긴 투쟁만이 가장 확실한 힘』이라고 격려했다.
26~27일 양일간에 걸쳐 우치시청과 경도부를 방문하여 면담한 후 성명서 발표와 기자 회견을 가졌다. 조사단은 선진 문명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정부 측의 견해와 대책을 물었으나 한결 같이 정치적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우리는「국제 인권법 A규약 2조」와 1993년 일본 정부도 서명한 유엔 인권위원회의「강제 퇴거에 관한 결의」를 상기시키면서、귀국 후 유엔을 비롯한 각국 인권 단체에 보고서를 낼 것임을 밝혔다. 시、부청 관리들은 개인적으로 우토로 문제가 토지소유권 재판보다는「전후 보상문제」、로 중앙 정부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결자해지」의 본질적 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단의 활동은 연일 보도되었다.
조사단 활동 기간 중 인상 깊었던 점은「우토로 지키기 모임」의 헌신적인 관심과 활동이었는데 교수、시의원、기자、공무원、학생、주부 등 2천여 명에 이른다. 그 중 우치시청 직원인「사이토 마사키」씨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매일 출근 즉시 조사단과 함께 다니며 도움을 주었다. 『괜찮으냐?』고 묻자 『눈치는 보이지만 좋은 일이기 때문에 동료들의 격려도 많다』고 했다. 빨간 염색、꽁지머리에 귀걸이를 하고 집회와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의 건전한 의식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27일 밤 대곡(大谷)대학에서의 강연회가 사실상 마지막 활동이었다. 나는 안델센 동화의「미운 오리 새끼」와「잃은 양 한 마리」복음을 인용하며 호소했다. 『세계적인 간사이(關西) 공항은 일본의 발전과 성장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야전 비행장 건설에 참여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왜 조금도 성장하지 못하고 난쟁이로 살아야 하는가? 가난하고 소외된 소수의 사람들을 포옹하는 사회라야 발전과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나는 사제로서 예언한다. 「결국 우토로 사람들은 승리할 것이다」』라고.
우토로 문제에 가장 큰 압력은 국제 여론이다. 일본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여실했다. 이것이 우리 조사단이 할 후속 작업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