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9년 한국에 신학생 자격으로 첫 발을 내딛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도요안 신부(살레시오회 소속)가 한국에서 회갑을 맞아 오는 6월 22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노동사목회관에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담당 최창무 주교의 주례로 축하미사를 봉헌하고 축하식을 갖는다.
살레시오회 사목 실습과정으로 한국에 온 도요안 신부는 59년부터 62년까지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라틴어 교사로 재직하다, 62년 10월 출국 67년 프랑스 리용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이듬해인 68년 서울 도림봉본당에서 사목생활을 시작했다.
도요안 신부는 『한국에 처음 온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라니 정말 세월이 빠르다』며 『앞으로도 보문동에 세워질 노동사목센터 건립 등 할일이 많아 걱정』이라고 기쁨보다는 끝없는 사목에 대한 열정을 회갑 소감으로 대신했다.
한국에 신학생으로 파견됐을 당시 연수 소아마비에 걸려 갖은 고생을 다해야 했던 도 신부는 이 덕에 서울 도림동 인근의 노동자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광주 살레시오에서 부평의 미군 병원까지 통원 치료를 하면서 당시 살레시오회가 담당했던 도림동성당에 자주 머물게 된 것이 영등포 일대의 노동자들 특히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을 접할 수 있게 됐다.
도요안 신부는 『한국에서 줄곧 노동사목을 한 것은 당시 도림동본당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큰 계기가 된 것도 있지만 나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노동조합 활동을 해 온 것을 어려서부터 접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30여 년 동안 노동사목을 해 오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말할 수 없는 보람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도 신부는 『노동자들에게 특별히 교회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관심이 필요하다』며 『사제가 중심이 되기보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은 노동사목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갖고 있는 나의 신념』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도요안 신부가 한국에 처음 올 때는 여의도 비행장이 김포로 옮겨진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고 한다. 비행장이라기보다 임시 터미널 정도였다는 도 신부는 한국의 현대사, 특히 노동계의 역사와 함께 했던 산 증인이기도하다. 영풍 모방사건을 비롯 전태일을 중심으로 한 청계 피복노조, 동일방직 등 70년대 산업화와 맞물려 일어난 각종 노동문제에 그는 현장에 있었다.
아직도 80년대 초 노동자들의 한글, 노동법, 교양 등 교육을 활발히 펼쳐 왔던 청계 피복노조가 없어질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할 정도로 도요안 신부는 노동자들에게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또 30년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아직 귀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을 부를 때 꼭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도 신부는 『귀화하고 싶지만 생존해 계신 어머니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한 사항이 많아 못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사목에 도움이 될 연구소를 개설, 노동사목과 관련된 기본 자료 등을 펴낼 계획도 갖고 있는 도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노동문제는 아직도 심각하다』며 『교회가 노동자들의 문제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끌어 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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