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라예보 방문은 43개월의 내전으로 20여만 명이 희생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아직도 분쟁 재발의 기미가 감돌고 있는 이 비운의 나라에 영구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위한 것이다.
당초 계획보다 3년이나 늦게 이루어진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사라예보 방문은 보스니아에 평화 정착의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상징적이고도 실제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교황은 4월 12일 오후 5시 사라예보 공항에 도착했다. 내전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려온 교황은 2명의 전쟁 고아가 들고온 보스니아 흙에 입을 맞추고 아이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아픔을 위로했다.
교황은 이어 사라예보 중심지에 있는 성당으로 향해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큰 희생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떼들과 함께 있어 달라』며『우리는「다시 또 전쟁은 안 된다(Never again War!)」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폭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코세보 축구경기장에서 거행된 미사에서도 교황은 사라예보의 비극적 운명을 상기시키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5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하며 교황은『사라예보는 전 유럽의 모든 이가 안고 있는 고통을 상징하는 도시』라며 『모든 선의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라예보가 상징해 왔던 비극이 20세기에 막을 내리고 다가오는 새로운 천년기에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는,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아침 일찍 정부 관계자들과 만났고 미사 후에는 사라예보 대교구청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주교단과 만났다.
교황은 특별히 이슬람, 유대교와 동방교회 등 각 종교 지도자들과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모든 인류는 하느님으로부터 평화의 순례자가 되도록 불리웠다』며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청해야 할 때가 왔다』며 평화 정착을 위한 종교인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사라예보에는 한 때 53만 명에 이르는 가톨릭 신자들이 살았지만 분쟁이 끝난 후 12만5천 명만 남아 있다. 40만 명이 넘는 가톨릭 신자들이 보스니아의 자기 집을 강제로 떠나야 했고 6명의 신부가 살해됐다.
지난 95년 체결된 데이턴 협정으로 공식적으로 내전은 끝났다고 하지만 민족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달만 해도 5개의 성당과 2개의 이슬람 사원이 폭탄 공격을 받았다. 교황의 방문은 보스니아 내 과격 민족주의자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화해와 공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교황은 이틀간의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13일 저녁 사라예보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며 다시 한 번 『다시 또 전쟁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교황의 이 기원은 증오의 총성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였지만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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