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을 앞에 하고 산등성이를 힘겹게 걸어 올라가면 철거민들이 모인 솔샘공동체가 나온다.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성 금요일, 예절을 거행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30여 명의 공동체 가족들은 캄캄한 산동네 골목길을 찾아온 김수환 추기경을 뵙고 조금은 당황스러운 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주민들의 얼굴은 TV나 먼 발치에서나 보았던 추기경이 자신들의 초라한 집을 찾아 주었다는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미아1동 철거지역, 재개발로 이미 이주비를 받아 지역을 떠난 가옥주들과는 달리 몇백 남짓한 이주비 아니면 사오 년 뒤에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중 택일을 강요받은 세입자들 1백여 가구가 남아 공동체를 형성해 살고 있다.
25번 시내버스 종점에서 가파른 언덕길을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가로등 밖에는 밝혀둔 불이 거의 없다. 대부분 이미 이주를 했고 나간 집들은 완파시켜 두었기 때문에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폐허이다.
김 추기경이 찾은 곳은 그래도 제법 번듯한(?) 집이다. 물론 화장실은 바깥에 있는「푸세식」공중 화장실이다. 높은 계단에 낮은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마루, 방 같은 방이 두 개, 방 사이에 조그만 부엌이 있다.
갑작스런 추기경의 방문에 엉거주춤 일어서 인사를 나눈 주민들은 저녁 8시부터 성 금요일 예절을 시작했다. 수난기를 읽고 십자고상에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며 주민들은 자신들이 지금 처한 곤경이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듯했다.
김 추기경은『그동안 찾아오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며 주민들에게 일일이 묵주를 건네 주었다. 김 추기경은 하지만『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분 곁에는 항상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면서『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위로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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