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정향 감독의 ‘오늘’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송혜교가 나온다기에 기분이 좋았지만 더 반가웠던 이유는 이 영화가 범죄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교정사목 안에서 직접 살해 피해자 가족 모임(해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순우리말)을 진행하고 있기에 더더욱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우리 해밀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기대로 함께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온 해밀 가족들이 위로를 받기보다는 또 다른 상처와 아픔과 혼란스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하시는 것이 아닌가? 뭔가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영화가 우리 해밀 가족들에게 위로와 힘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이 되어버린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영화는 이렇다. 송혜교는 10대 소년에 의한 범죄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그러나 송혜교는 그 10대 소년을 용서한다. 앞으로 반성하며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1년 후 자신이 용서한 소년이 반성은커녕 여전히 범죄 속에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용서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영화 속 신부님과 수녀님은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요하는 듯한 모습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정향 감독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시간이 필요한데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와 교회를 꼬집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의를 기초로 하지 않은 용서는 죄악이라고. 그리고 가해자들이 죗값을 받아야 피해자들의 아픔이 아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 이게 무슨 유감스러운 용서란 말인가. 물론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너무 쉬운 용서의 강요는 옳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용서는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니던가! 무엇에 기초한다거나 무엇을 전제로 하는 것은 참다운 용서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교회는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용서에 이르기까지 겪게 되는 분노와 아픔, 상처의 과정을 그들과 함께해 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용서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를 통해서 내 마음이 진심으로 평화로워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고백하는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말이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9월 방한한 미국의 살해 피해자 가족협회(MVFHR)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이름으로 사형을 시키지 마라.” 과연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피해자 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보복이나 복수를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당한 아픔과 슬픔, 상처를 함께 아파해주고 보살펴 드리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오신 우리 해밀 가족들은 말한다.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그 말씀이 자꾸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날 저녁 기도 중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너희는 사랑을 너무 모른다고!”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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