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和 59년도 東北대학대학원 농학연구과(토양 미생물학) 박사과정 전기 2년의 과정 입학자 선발시험에 합격되었음을 통지함』. 이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에 건너가 온갖 역경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에 입학한 대전시 대흥동 황철(마태오)씨의 맏딸 황경숙(제노베파ㆍ24)양의 합격통지서이다.
황양은 83년 3월 충남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다음 일본 동북대학의 특별유학시험에 한국학생으로 홍일점으로 합격하여 동대학 미생물학과 4학년에 편입되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유학이라는 말은 생각지도 못하는 처지였으나 교수를 비롯한 주위의 권고와, 무슨 고난 속에라도 딸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부모의 열성으로 일본은 건너갔으나 공부를 계속 할 길이 막연했다.
그러나 황양은 일본교수의 가정을 뒷바라지 해주고 남의 연구논문을 정리하는가 하면 여성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는 일본 로타리클럽의 장학생 후보로 추천을 받고 동대학원에 진학, 역시 여자로는 단 1명의 합격을 차지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원에 합격했으나 예상외로 로타리클럽의 장학생 선발에서 중공학생이 합격되고 황양을 비롯한 한국 학생은 한사람도 끼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황양의 함축성 있는 편지의 구절이다.
황양은 그렇다고 거액의 대학원등록금을 고국의 부모들에게 요청하지를 못했다.
집안 실정을 너무나 잘 아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얼마 후 일본의 외숙과 일부 교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애절한 편지가 왔다.
부모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저는 성당에서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가정에도 조그만 기쁨을 주시어 그 기쁨 속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하소서. 우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읍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시기에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황양은 이렇게 고국의 부모를 달래고 있다.
전란의 비극 속에 월남하면서 가톨릭에 입교한 황양의 부모는 한동안 사업이 그런대로 유지되었으나 수년전 교통사고로 몸을 다치면서부터 기동이 불편해지자 사업이 쪼들리기 시작, 현재는 어려운 삶을 지탱하고 있다.
『올해 10월에 미생물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됐다』는 딸의 편지를 쥐어든 아버지 황씨는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딸의 장래를 위해 희생 하겠다』하면서도『돈이 원수』라고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사랑의 손길이 갈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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