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간암으로 선종한 고아들의 아버지 故 이우철 신부. 「성심원」 원장으로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던 성심원 원사기공식의 첫삽을 놓기 무섭게 지병의 악화로 곧 바로 입원한 그 이튿날인 이날 오후 6시20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고아들을 위해 살다 간 故人이었기에 지난 2월 21일 명동성당 문화관 2층 강당에서 거행된 영결미사는 더욱 애절함으로 매워졌다.
고인이 길러 온 수많은 아들들의 오열 속에 거행된 이날 영결미사는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경갑룡 주교와 김남수 주교를 비롯 1백20여 명의 교구사제단이 공동 집전했는데 평소 고인을 존경하던 신자와 고인의 가족ㆍ친지 등 1천여 명이 참석, 가신님의 마지막 명복을 빌었다.
故 이 신부는 46년 7월 1일 해방의 기쁨도 아랑곳없이 서울역 주변에서 방황하는 방랑아 5명을 본당에 데려와 보호하면서부터 40년 가까이 전쟁고아를 포함한 1천2백여 명의 고아를 사랑으로 길러 온 「고아들의 아버지」였다.
이날 영결미사 후 고별식을 마지막으로 수많은 추모객들의 애도 속에 명동성당을 출발한 故 이우철 신부의 유해는 10여 대의 버스에 분승, 장지까지 뒤따라온 고인의 전임본당신자들과 성심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관예절에 이어 경기도 용인 성직자묘소에 안장됐다.
한편 김수환 추기경은 이날 영결미사 중 故 이우철 신부를 추모하는 강론을 통해 『교구의 원로사제이시고 불우청소년들의 형제요 목자요 어버이로 살아 온 고인은 47년 당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성심원을 설립한 후 69세의 일기로 가시는 그 날까지 자신이 보살피던 아이들과 함께 굶고, 떨며 동고동락해 오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날 영결식장은 영결미사 후 유해고별식과 故이우철신부의 약력 소개에 이어 성심원대표가 『신부 아버님! 살아생전 효도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습니다. 저희들 가슴에 영원한 것을 남겨 주신 아버님은 가셔도 가신 것이 아닙니다. 장원동 (?)층집에는 아직도 우리들의 아버님은 살아계십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로 끝난 고별사를 읽어나가자 더욱 애잔한 흐느낌으로 메워졌다.
故 이우철신부는 1915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동성상고 을조와 성신대신학교를 나와 41년 사제로 서품된 후 중립동본당보좌ㆍ신의주본당주임ㆍ평남 중화본당주임을 거쳐 중립동 본당주임신부로 있던 46년부터 불우어린이들을 돌보기 시작해 이듬해인 47년7월 「성심원」을 설립, 수많은 어린이를 키워오면서 잠원동본당의 전신인 잠실본당주임신부로도 일해 왔다.
이후 소년의 마을로도 불리는 「성심원」을 확장해 왔는데 55년 7월 원아들의 장래를 위해 배문전수중고를 인수, 배광「농예기술학교」를 설립, 교장직을 겸임키도 했다. 62년 문화포장을 수상했으며 80년 5월 잠실 본당주임을 그만 두고 선종하기전까지 성심원 원장으로 불우청소년구호사업에 전념하면서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파티마성모수녀회도 지도해왔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