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는 1월 13일 「다미안신부상」제2회 수상자를 확정, 「공로부문」에 디오메데스 수녀를, 「봉사부문」에 박영자씨를 각각 수상자로 발표했다. 차제에 본보는 두 수상자의 소감과 나환자들에 대한 뜨거웠던 사랑의 행적을 알아본다.
◆「공로부문」 디오메데스 수녀
불우환자 진료반세기
61년부터 구라사업 투신
“나환자 인식 많이 나아져”
37년 입국-추방된후 58년 재입국
『나는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상을 타게 돼 축하한다고 해서 알았어요. 원하지도 않은 상을 타게 돼 화(?)가 났어요. 상 받는 것은 싫어요』
제2회「다미안신부상」공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디오메데스 메펠트 수녀(독일인·75세·포교 성베네딕또 수녀회)는 수상소감을 자신의 삶처럼 순박하게 털어놨다.
1937년 28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 땅을 밟아 거의 50년간을 이 땅의 불우한 환자들, 특히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디오메데스 수녀의 일생은 그리스도를 실천한 사랑과 희생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25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성베네딕또 수녀회에 입회, 수도자로서 의술을 통한 사랑실천과 선교에 투신한 디오메데스 수녀는 함경도 원산·함흥 등지에서 6·25전까지 의료봉사활동을 폈다.
6·25가 발발하자 점점 더 심해지는 공산당 탄압으로 3개월간 옥고를 치루는 등 숱한 고생을 했던 시절이 가장 인생에 남는다고 밝힌 디오메데스수녀는『당시 하느님이 우리생명을 구해주셨다』고 술회했다.
공산당으로부터 강제추방 돼 독일로 돌아간 후 58년 한국에 재입국한 디오메데스 수녀는 왜 다시 오게됐느냐는 질문에『정든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에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에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에 아니냐』고 반문했다.
61년 구라시업을 위임받아 62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용봉동에 성심의원을 개설, 본격적인 구라사업을 펼쳐온 디오메데스 수녀는 현재 성심의원을 인수해 개설된 대구가톨릭병원 성주 분원장으로 경북일대의 나환자들과 지역주민 등 하루에 15~3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나병과 나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 디오메데스 수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진료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스컴을 무척이나 꺼리는 숨은 봉사자인 디오메데스 수녀는 79년 한국기독교 구라회가 제정한 제9회 한국 구라상 의료부문 공로상을 받았으며 82년에는 왜관 성베네딕또회 지인수·남도광 신부(독일인)와 함께 독일정부가 수여하는 국민최고훈장인「십자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봉사부문」박영자씨
나병신부의 손발이 돼
나환자기에 겪어야 하는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와
“도운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 받은 것”
나환자라는 이유로 미운 돌멩이처럼 구르던 한 사제의 손과 발이 되어 아낌없이 청춘을 불살랐던 朴英子(마르가리따·44·전남 목포시 산정동본당)씨는 제2회 다미안상 봉사부문수상소식에 몸둘 바를 몰라하며 『하느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기에 그 영광은 당연히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고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1926년 11월부터 1971년 1월까지 나병말기의 장순도 신부(1904~1971)와 아픔과 기쁨을 함께 했던 朴씨는『10년 가까운 세월이 자신의 일생 중 가장 풍요로왔던 때』라며 극심한 고통을 오히려 기쁨으로 승화 시켰던 장신부의 모습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하게 느꼈다』고 술회한다.
대구교구장 안 주교 재임시 발병, 1933년 日本으로 건너가 28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1961년 귀국한 장 신부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 알게 된 박씨는 처음에는 두려움이 앞섰으나 일단 결심을 굳히자 어머니의 애절한 만류조차도 소용이 없었다.
진물이 뚝뚝 흐르는 몸을 이끌고 경북고령 은양원과 칠곡 피부과의원을 전전하는 동안 박씨는 감각이 없는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고름과 진물을 씻기고 닦아내며 고국의 산천과 나환자이웃을 보고파하는 장 신부를 도와 전국의 나환자촌을 순례하기도 했다.
또한 장 신부의 옷도 손수지어 입혔으며 임종 한 달 전부터 기대지 않으면 괴로와하는 장 신부를 받치고 있느라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참으로 자신이 할일이 아니라『하느님께서 관여하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고 겸손해하는 朴씨는 또『장 신부님을 돌보는 동안 오히려 자신이 영적으로 크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고 역설한다.
박씨는 장 신부의 임종 이후에도 안동교구 류강하 신부의 생활을 보살피며 나환자걸인이라도 찾아오면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반겨 이웃에「聖女」라는 소문이 자자하기도 했다.
14세때 받은 견진성사의 기쁨을 누를 길 없이 평생 동정으로 사제관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그대로 이어 현재도 사촌동생 박영웅 신부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朴씨는 나환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호소하면서『제2의 장 신부님이 계시다면 언제라도 달려가 힘을 보태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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