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 신경 경화증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언제 어느 부분이 불쑥 마비될지 모르는 불안함, 쌍지팡이가 없이는 꼼짝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일초도 빠뜨리지 않고 계속되는 통증이 이제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빠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이땅에 와 일생을 불태웠던 뮈뗄 민국교의 일기장 - 지금까지 누구도 읽어내지 못했고 아울러 공개되지 않은 6천페이지의 일기장을 불문타자로 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지정환 신부(52ㆍ벨기에人ㆍ전주교구). 4반세기를 한국에서 한국인의 사고와 행동으로 살며 이제 한국인이 다 되어버린 벽안의 신부에게 열린 새해 새 아침은 가실 줄 모르는 통증으로 시작되지만「사력을 다해 해내야하는 필생의 작업」이 수북히 쌓여있기에 그 어느해 보다도 가슴벅찬 아침이다.
전주교구 교구청 별관의 작은 방에서 새어나오는 타자소리는 지금까지 글자의 행간속에 묻혀 잠자고 있던 교회사의 부분부분이 새 생명줄을 타고 파득파득 튀어나오는듯, 경쾌함과 함께 신비로움마저 자아내고 있다.
그방안 마비된 다리와 함께오는 통증이『무어 대수냐』는듯 눈은 집게에 걸린 佛語의 양털글씨에 고정시키고 양손은 타자를 두드리는 벽안의신부의 모습은「해야하는 일에 대한 몰두」와「받은 능력에 대한 감사」이외에는 그 어느것도 없었다.
뮈뗄 주교의 일기장을 해독하는 이 작업은 언뜻 쉽게 보이는 일이지만 불란서 사람조차 한 문장을 제대로 읽어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필적으로, 거기에다 당시 한국교회와 한국의 독특한 용어와 방언들이 문장을 가로 막는다.
민 주교의 이 일기장은 빠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한국교회사 연구소에서 마이크로 필름으로 촬영 인화한것인데 이 일기장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불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한국어를 모국어만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특히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언어, 세계사안에서의 관계 등을 환히 유추할 수 있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이가 많지 않은 현실속에서 호남교회사 연구소장 김진소 신부의 특별한 요청과, 교구장의 허락으로 시작된 이 일은 한국교회사와 한국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매주 1백페이지를 해독해도 1년이 넘게 걸리는 이 대작업을 1차적으로 금년말까지 누구나 쉽게 번역할 수 있도록 불어로 타자하는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지 신부는 이 해독작업이 끝나면 다시 한국어로 번역할 계획이다.
국내에선「치즈신부」로 더욱 잘 알려진 지정환 신부는 1931년 벨기에의「브뤼셀」에서 출생, 「루벵」大를 거쳐 1958년 4월 사제로 서품되어 59년 12월 전교협조회회원으로 전주교구에 부임, 전후 어려운시대와 격동기를 한 국민과 함께 했다.
전주교구에서 전동ㆍ부안본당주임을 거쳐 임실본당에 부임하면서 농민들이 안고온 한마디씩의 양으로 한국최초의 치즈공장을 가동한 지 신부는 이후 70년부터는 신협운동을 전개, 전주교에 신협운동의 정착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된 과로 탓인지 지신부는 한국에서는 보기드문「다발성 신경경화증」이라는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회복과 악화를 거듭하는 동안 체력도 쇠약해졌고 78년도부터는 급기야 허리아래의 몇부분이 마비되어 지팡이 신세를 져야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3주일을 훨체어에 의지해야 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눈동자의 움직임과 손가락의 움직임에 약간의 이상이 오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동안 지 신부는 보두네 베르모렐 죠죠 우도미알롱 신부가 민 주교에게 보낸 편지의 번역을 도우면서 자신의 일을 거리낌없이 해치웠다.
『아직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매일 온도까지 측정하면서 듣는것 보는것 느끼는것 전부를 섬세하게 기록한 민주교의 열의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는 지신부는『모든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분석한 그 태도는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신부는 이 작업을 끝내기전에 시력과 손가락이 마비될까봐 가장 큰 걱정이지만『아마도 하느님께서 쓰실만큼 쓰실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이리 성모의원 원목신부로 있으면서 장애자사목에도 나설 예정인데 그자신 장애자이기도 하지만『장애자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배려가 참으로 아쉽다』는 그는 휄체어를 타야할 수 밖에 없는 장애자『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는 장애자들이 마음놓고 미사 참례만이라도 하도록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호소하면서『무엇보다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모두가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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