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선종한 故 장병보 신부. 일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아오면서 마지막 정열을 다시 교육에 불태우기위해 남산동본당을 떠나 효성여자고등학교 교장에 부임한지 채 1년도 못돼 갑작스런 주님의 부르심에 황급히 길을 떠난 故 장병보 신부였기에 지난 10일 남산동성당에서 거행된 영결미사는 더욱 애절함으로 메워졌다.
이날 영결미사는 서정길 대주교 주례로 신학교 동기 이갑수 주교와 이문희 주교를 비롯, 60여명의 교구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거행됐으며 평소 고인을 존경하고 따르던 교육계 인사들과 일선교사들 그리고 효성여고 재학생 등 1천여명이 참석, 가신님의 마지막 명복을 빌었다.
신부로 서품된 직후인 50년 경남 진해천주교회와 81년부터 83년 2월까지 남산동본당주임을 역임한 것을 제외한 일평생을 교육연구와 실천에 바쳐온 故 장신부는 10여년 이상의 외국유학에서 쌓은 학문을 이땅의 2세들에게 전하기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며 선종하기 바로 전날에도 밤늦도록 불어과 연구협의회를 주도하기까지 했다.
이날 영결미사후 고별식을 마지막으로 성직자 묘소로 향하는 길양편에는 효성여고 재학생들이 늘어서 故 장병보신부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흐느낌과 애절함속에 지켜보았으며 추모행렬을 끝으로 성직자묘소에 도착한 故 장병보신부의 유해는 하관 예절과 함께 안장됐다.
한편 이날 영결미사중 故 장병보신부의 추모사를 낭독한 신학교 동기 신현옥 신부(소화 본당 주임)는『고인은 평소 외로운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도 누구보다도 2세들의「사랑의 교육실천」에 앞장서 왔으며 다년간의 외국유학을 통해 경험한 지식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주입시키기위해 무던히 애쓴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이어서 신신부는『이러한 故 장병보 신부의 유지는 이제 후세의 모든 학생들에게 전해져 영원한 샛별로 다시 빛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애도했다.
또 이날 영결식장은 학생대표 정현주(3년)양이 조사에게『따뜻하고 자상하게 항시 우리들 곁에서 아버지같은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던 교장선생님을 이제 우리들 손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니 이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합니까』고 읽어나가자 더욱 애잔한 흐느낌으로 메워졌다.
故 장병보신부 1922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 가톨릭대학을 나와 50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61년 미국 워싱톤대학에서 교회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대구관구 법원장직을 맡아왔다. 61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거쳐 같은해 대건중ㆍ고교장을 시작으로 故 장병보신부는 70년 대건신학대학 교수, 74년 효성여자중학교교장 77년 효성여자고등학교 교장 등 일평생을 교육계 일선에서 몸담아왔으며 81년 남산동본당주임을 맡아 사제로서의 길을 걷다가 83년부터 선종하기전까지 다시 효성여고교장직을 맡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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