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드디어 대망의 20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로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믿음을 찾아 얻음으로써 시작된 그 거룩한 구원의 역사의 200돌이되는 1984년의 문턱에 서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그리며 바라보았듯이 우리는 오늘을 그리고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1980년「가정 성화의 해」로부터 시작하여 81년「이웃전교의 해」82년「본당공동체의 의해」그리고 83년「교구공동체의 해를 거쳐 왔습니다. 그런가운데 81년에 「조선교구설정 15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여의도 광장에서 전국 신앙대회를 가져 이 땅의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새롭습니다. 이것 역시 200주년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이제 그 대망의 2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참으로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이어받고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되어「이땅에 빛을」밝히고자 합니다.
때마침 전례상으로는 이미 새해를 여는 대림절입니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임하시어 우리를 당신의 생명과 빛, 구원의 은총으로 가득히 채워주실 것을 기다리는 이 철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것은 곧 우리모두가 200주년에 갈망하는 바로 그 은혜입니다.
특히 지금은 구원의 성년입니다. 한국주교단은 200주년을 더욱 큰 구원의 은총의 해가 될 수 있게끔 이 성년을 전례상 1984년 이 완결되는 그리스도왕 축일까지 연장해 주실것을 교황 성하께 청하여 그 윤허를 받았습니다. 때문에 이 200주년은 참으로 우리를 위해「은총을 받고 또 받는」(I 요한ㆍ16)거룩한 해입니다. 이 거룩한 해, 한국교회의 200주년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난 세월동안 우리에게 내려주신 그 모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성령께서 이 땅을 새롭게하여 주시도록 더욱 열절히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진정 회개하고 쇄신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200주년은 우리를 위한 큰 축제의 해입니다. 더욱이 이 해에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시고 세계의 목자이신 교황 성하께서 친히 우리를 방문하여 주실 것이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갈망하고 갈망하여온 103위 한국 순교복자들이 성인품에 오르시게 되었으니 우리의 기쁨은 비할바없이 큽니다.「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춤추어라!」(시편 96) 이렇게 환호하며 기쁨의 손뼉을 우리는 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쁨의 축제를 단지 우리들만의 축제로 끝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축제는 우리의 이웃과 기쁨을 나누는 축제, 온 겨레와 기쁨을 나누는 축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더러 이 기쁨은 온 세계에 전달되고 확산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 11-12). 수난 전날 저녁에 주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한국교회는 이 시간 깊이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이 말씀을 따라서 우리는 진정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두루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정녕「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교회의 사목헌장 1항) 라는 말씀을 스스로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이들과 고통을 나눌줄아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주년의 한국교회가 사회속에서 이 같은 사랑을 산다면 우리는 200주년을 진정 이웃과 함께, 또한 겨레와 함께하는 기쁨의 축제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런 사랑을 살기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날로 더욱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깊이 살 줄 알아야 하고, 우리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바칠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가 있는가, 이 점을 우리는 2백주년에 물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은 한국교회의 거룩한 유산이요 전통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순교선열들의 순교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분들은 결코 자신들의 구령만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으셨습니다. 이웃과 겨레의 복음화를 위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기 위하여 목숨을 비롯하여 당신들의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2백년의 한국교회의 역사는 이런 순교자들과 이에 못지않은 증거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끊임없이 겨레의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가신 믿음과 사랑의 행적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겪은 1백여년간의 그 혹독한 박해는 물론이요, 그 이후 일제의 탄압 하에서, 또는 해방 후 공산치하의 이북에서, 또는 6ㆍ25동란중에 무수한 이들이 그리스도께서 가신 이 길을 가셨습니다. 유신체제하에서 교회가 겪은 진통 역시 그 수난의 길의 연장이었다고 보아야할 것 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하여 하는 노력은『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루까 4ㆍ18) 교회본연의 사명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난을 겪어왔고 그런 가운데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를 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결함과 부족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발전을 하고있는 것은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이다』라는 말씀 그대로 우리에 앞서 무수한 순교자들이 믿음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요, 또한 이에 못지않게 많은 증거자들이 복음의 덕과 사랑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친해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3. 한국교회는 분명히 지금 발전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 교회가 기이한 현상이라고 여길만큼 우리는 지금 실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2백주년의 한국교회를 세계 여러곳에서 많은 분들이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찬사에 만족만하고 있을 수 없고, 우리 교회의 발전을 자랑만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진정 200주년을 다시금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반성의 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수적으로 발전하고 또한 생동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과연「이 땅에 빛을」밝히는 교회인가? 이 땅의 소금과 누룩의 구실을 하는 교회인가? 라고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자문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중의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빛이 되고 소금과 누룩이 되기위해서 우리는 아직 너무나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순교선열들의 그 얼이 오늘의 한국교회안에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실로 의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200주년을 위해 200주년을 기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 곧 교회의 제3세기를 위해서 이때를 기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 세기를 향하여 밝히는 등불이 되기위해 우리는「이 땅에 빛을」목표로 내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성령에 힘입어 다시 남으로써 겨례의 오늘과 내일을 밝히는 믿음과 희망 사랑의 등불되고자 우리는 200주년을 기리며, 이땅에 구원의 은총이 샘솟고 북녘 어두움도 밝혀서 우리 겨레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빛이 되고자 이 200주년을 기리며, 더 나아가 세계를 밝히는 구원의 횃불되고자 우리는 이 200주년을 기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태워보자는 것이 이 시점에 있어서의 우리의 소망이요 또한 다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선열들의 그 순교정신, 그 믿음, 그 사랑, 그 복음정신에 투철한 삶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시점에서 이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한국교회가 2백주년에 참으로 새로운 믿음과 정신으로 다시 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한국교회는 제3세기에「이 땅에 빛을」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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