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확정 소식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렵고 외로웠던 초창기 시성운동을 회상하니 벅찬 감격과 감회를 누를 길 없었습니다』 2백만 한국 신자 모두가 맛보았을 기쁨과 환희가 더욱 짙을 수밖에 없었던 전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그 가운데서도 75년, 사장되어 가던 시성 시복 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주역들이 접하는 한국 순교복자 1백3명의 시성확정 소식은 쉽사리 짐작이 가지않을만큼 짙고 또 깊다. 김기철 의원(반포본당ㆍ국회의원). 그는 71년 시작됐던 복자 김대건 신부 시성촉진 서명운동을 5년 만에 부활시키는 한편 당시로서는 박력 있는 평신도 운동으로 이끌어갔던 주역들 가운데 전국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회장직을 맡았던 장본인이다.
물론 68년 전국평협이 결성된 이후 김대건 신부의 시성추진운동은 평협의 지속적인 주요사업으로 그 위치를 견지해온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국규모의 모든 기구 성격이 그러하듯 강력한 행사력이 동반되지 못했던 당시의 김대건 신부의 시성운동은 성직ㆍ수도자ㆍ평신자 모두가 참여하는 전교회적인 성격을 갖지 못했다는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시성운동은 명맥만 유지해 왔을 뿐 싱싱한 열매를 맺지 못해왔었다.
이같이 공전을 거듭해온 시성시복운동이 다시금 교회의 관심사로 등장한 것이 75년, 평협제 8차 정기총회가 76년도 역점사업으로 김대건 신부 시성촉진 서명운동을 부활시키면서부터였다. 시성운동 초기부터 발을 디뎠던 김기철 의원이 회장직을 맡았던 당시 평협은 지금까지의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 비예산사업을 예산사업으로 승격시키면서 시성시복 운동을 평협의 주력사업으로 재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75년 가을 김 의원은 당시 전국평협 총재 김재덕 주교와의 공동명의로 된 「제5회 평신도의 날 담화문」을 통해 김대건 신부를 비롯, 1백3위 복자들의 시성운동과 아직 복자품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해 전 신자가 적극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때만 해도 신자들의 관심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는 것은 모든 여건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시성절차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기적은 시성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꽤 까다로운 조건이었지요』『당시 전교회가 열렬히 호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는 김 의원은 『그러나 1백3위 시성확정소식을 듣는 순간 모든 아쉬움과 허전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감격의 순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76년은 김 의원이, 아니 전국 평협이 시성을 향해 몸 사리지 않고 뛰었던 가장 바쁜 한 해였다. 춘계주교총회가 주교들의 연명으로 한국순교복자 1백3위의 시성청원서를 성청에 제출하고 김남수 주교를 시성촉진운동 책임자로 선임함으로써 시성운동이 새 국면을 맞게 되자 『평협은 1백3위 시성과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해 다시 한 번 중지를 모으게 됐다』고 김 의원은 전하고 있다.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일어난 시성운동이 주교회의 사업으로 채택된 것은 교회 모든 운동이 나가야하는 正道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평협은 시성운동이 주교회의 사업으로 채택된 이상 주교회의 지침에 따르면서 모금, 자료수집, 기도, 계몽에 주력키로 활동지침을 세웠습니다』
이 같은 활동지침에 따라 그 해 9월에 개최된 9차 총회에서는 시성운동을 적극 전개해 나간다는 기본원칙 하에 ①전문위원이 작성중인 기도문이 인준 되는대로 상본에 기도문을 인쇄, 보급한다. ②「기적재료조사양식」이 완성되면 이 양식에 의해 기적수집 운동을 벌인다는 등 시성운동 실천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곧이어 전국 발기인대회에서 「시성시복 추진위」를 발족시킨 평협은 전문 23개조로 구성된 「시성시복운동 추진규약」을 채택하고 보다 많은 복자와 성인이 나오도록 모든 신자들은 인내와 끈기로써 기도바칠것을 결의문을 통해 선포했다.
『77년 50만장의 시성을 위한 기도문(김남수 주교 인준)을 제작, 전국적인 기도운동으로 전개시키고자 많이 노력했다』고 강조하는 김 의원은 『시성을 향한 평협의 자주적인 노력은 78년 총회에서 다시 한 번 재확인됐을 뿐 침체의 늪은 계속됐다』고 회고했다.
80년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준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시성과 관련된 모든 업무가 2백주년 준비위로 이관돼 10여 년간 펼쳐온 평협의 시성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전개된 시성시복을 위한 「순교자유해 순회기도회」는 평신도들의 열정적이고도 진지한 기도운동이 이어진 것이었다』고 평하는 김 의원은 『지금도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시성운동이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검토되었다면 하는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평신도운동의 활성화는 교회 모든 노력이 화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며 가치가 있게 된다』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지면서 누가 뭐라해도 1백3위 시성을 맞는 자신의 기쁨은 감출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다시 한 번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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