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회 내에서 마저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옥중(獄中)의 최기식 신부. 그러나 최 신부가 부산 교도소에 수감될 때부터 현재 대구 교도소에 이르기까지 약 1년 가까이 그를 뒷바라지 해오고 있는 수도자가 있어 정의와 사랑이 강한 외침을 보내고 있다.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수녀이며 최 신부에게는 고종 누나가 되는 김 발바라(제옥ㆍ51세) 수녀는 교회와 노령의 최 신부 양친을 대신해 하루도 빠짐없이 최 신부를 면회하고 그의 눈과 귀ㆍ손과 발이 돼 주면서 갇힌 몸이 된 최 신부가 사제로서 의연히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더 해주고 있다.
김 수녀는 최 신부가 지난해 4월 8일 부산으로 이송된 후 곧바로 4월 11일 부산으로 내려갔다. 4월 15일 부산 교도소로 수감되기 전 남부 경찰에서 구금돼 있는 동안 세 번이나 면회를 갔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 후 교도소로 옮겨진 후 매일 교도소를 찾아갔으나 역시 대면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4월 24일 지학순 주교가 최 신부 면회를 위해 부산에 내려왔을 때 결사적으로 면회를 해야겠다는 일념에서 예의도, 염치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 주교의 승용차에 먼저 올라탔었다.
그래서 그날 첫 면회는 할 수 있었으나 최 신부와는 단 한마디의 얘기도 나눌 수 없었다.
그 다음날부터 또다시 매일 교도소를 찾아갔으나 면회는 할 수 없었다. 면회는 못해도 교도소 앞마당에서 옥중의 최 신부를 생각하며 기도를 통해 그의 아픔을 나누었다.
이처럼 20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도소를 찾는 김 수녀의 열성은 끝내 그곳 교도관들을 감동시켜 그들의 안내로 판사의 허가를 얻어 면회를 하수 있게 됐다.
주2회의 면회는 그토록 기다려지고 감격적일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은 하루를 완전히 소비해야 했다. 20분간의 면회 시간을 갖기 위해 교도소를 오가는 시간과 판사의 승낙서를 받는 데는 6시간이 걸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1심 재판이 시작되고 변호인 반대신문이 계속되면서부터는 매일 면회가 허용됐단다.
부산에서 5개월에 걸친 폭염 속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고 9월 6일 최 신부가 대구 교도소로 이감되자 김 수녀는 이튿날 대구로 옮겨왔다. 3개월을 대구 두류본당 같은 수녀회 분원에서 지내며 최 신부의 뒷바라지를 계속했다.
그러나 추위 속에서 매일 몇 시간씩 기다려 가며 계속되는 면회는 김 수녀의 건강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원 본당 소속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의 주선으로 교도소를 코앞에 둔 이곳 수녀원으로 지난해 12월 27일 옮겨왔다.
이곳은 교도소의 기상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 하루일과를 자연히 알 수 있는, 김 수녀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김 수녀가 옥중의 최 신부와 꼭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김 수녀의 하루일과는 새벽4~5시경 기상해 아침기도와 미사를 마친 후 오후10시부터 갖게 되는 최 신부와의 면회를 준비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수인들의 면회는 신청자의 접수 순서에 따라 갖게 돼 있어 조금이라고 빨리 가야 빨리 그를 면회할 수 있다. 지금까지 면회 순서가 5번째를 넘겨 본적이 없을 만큼 김 수녀의 준비는 용의주도하다. 면회는 항상 오후의 운동 시간을 고려해 오전 중에 갖는다.
면회 후 11시가 조금 지나 수녀원에 돌아오면 교회 내의 정보나 각종 보교 자료를 메모하고 최 신부의 세탁물을 손수 세탁하고 필요한 서적을 구하거나 털실로 최 신부와 관련 피고인들이 내의ㆍ양말 등을 침묵의 기도 중에 짠다. 지금까지 최 신부의 내의류는 거의 다 손수 만들어 주었고 학생들에게는 털실 양마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보름마다 하루씩은 꼭 원주로 최 신부의 양친을 방문하고 위로와 최 신부의 안부를 전한다. 양친 방문은 최 신부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김없이 행해지고 있는데 현재 부친은 96세, 모친은 87세로 이들 역시 보름마다 김 수녀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들을, 아들은 노령의 부모를 한없이 보고 싶고 목을 껴안고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건만 서로가 오갈 수 없는 몸이기에 김 수녀는 이 둘을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이자 기쁜 소식의 전달자이기도 하다.
김 수녀는 최 신부의 양친이 그토록 고령에도 불구, 금년 겨우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건강히 지내는 것이『기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대구 교도소에 이감된 후『살이 많이 빠지긴 했으나 건강한 편』이라고 전한 김수녀는 『최 신부가 대구 교도소에서 일근 책만 50권이 넘는다.』면서 그 책들은『대부분이 교회 신간이나 세계 사상집』이라고 들려줬다.
무엇보다 자신이『최 신부를 뒷바라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총 원장 수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김 수녀는『화원 본당 조정헌 신부님과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님들 그리고 특히 항상 친절히 대해 주시는 대구 교도소 관계 직원들에게도 늘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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