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주교의 교구장 직 사임은 고령(71세)과 건강상 이유도 있었으나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급변하는 시대에 교회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용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 주교의 용퇴는 파 주교가 교구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청주 사천동 소재 양로원「성심원」에 거주하면서 노인들을 돌보는 한편 지방에 산재해 있는 불우한 음성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한 것으로도 잘 나타나고 있으며 그 퇴임사에서는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 시대는 여러 분야에 있어서 젊고 활동력이 가안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고령에 건강하지 못해 중책을 감당키 어려워 지난해 성청에 사표를 내었는데 이번에 교황께서 양해하시고 사표를 수리, 큰 짐을 벗은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앞으로 젊고 활기차고 열성 있는 후임자가 나와서 앞으로 주님의 사업에 더욱 큰 발전이 있을 것을 믿고 기대하며 이 자리를 기쁘게 물러나는 바입니다.』
신병의 악화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파 주교는 이한한지 7년이 흘러 이제 한국 신자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갈 즈음 영면의 소식으로 다시 한국을 찾아오면서 한국 신자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한 것이다.
1989년 미국 뉴욕「부룩클린」에서 뉴욕 시립 고교를 졸업하고 메리놀 외방 전교회에 입회, 1927년「뉴욕」성프란치스꼬 대학과 1930년「워싱톤」가톨릭 대학원을 각각 졸업1936년 사제로 서품됐다.
사제 서품 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기 전 베나ㆍ스크랜튼 메리놀회 소신 학교에서는 교편을 잡기도 한 파 주교는 1932년 한국에 선교사로 내한, 평양에서 한국어를 배운 후 1933년 평북 위주본당 주임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8년간 의주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파 주교는 태평양전쟁 발발로 1941년 일본 경찰에 체포, 신의주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북한 공산당에 의해 1942년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본국으로 추방된 파 주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구라파 지역 종군 신부로 활동하였으며 종전 후 1946년 메리놀회의 「부룩클린」소신학교 교장1948년 메리놀회 본부 교육감 등을 역임한 후 1950년 6ㆍ25동란 중 미군 군종신부 자격으로 두 번째 내한, 일선 장병 및 거제도와 마산로루 수용소 등에서 미군과 북한 포로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6ㆍ25동란이 끝나고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한국 지부장을 맡은 파 주교는 1953년 9월 서울교구의 충복 지구가 청주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면서 감목 대리로 피선, 1956년 가을 메리놀 외방 전교회 본부 부총장으로 떠나기까지 3년간 청주교구 설립 준비에 크게 기여했다.
메리놀 외방 전교회 본부 부총장으로 재임 중 1958년 6월 13일 청주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청주교구장에 임명한 파 주교는 그해 9월 16일 보가 아드레아 김대건 신부 순교일에 미국「뉴욕」소재 메리놀 외방 전교회 대신학교 성당에서 주교성성식을 가진 후 11월 21일 세 번째로 내 했다.
그리하여 파 주교는 11월 25일 오전 10시 청주중학교 강당에서 성대한 예식을 갖추고 교구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파 주교는 교구장 착좌식에서『세 번째 한국에 돌아오니 내 나아에 온 것 같이 기쁘다. 이제는 떠나지 않을 것이며, 아마 천당으로 갈 때나 떠날 것 같아』면서 한국 땅에 뼈를 묻을 각오로 임했다.
파 주교가 충북에서 확약할 당시 충북의 교세는 5개 본당에 신자 수는 본당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은 장호원본당 뿐이었다.
이러한 청주교구를 파 주교는 재임 11년 동안 25개 본당에 신자 수 5만3천여 명으로 청주교구의 기반을 든든히 쌓아 올려 놓고 교구장직 사임 이후에도 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7년간 더 청주에 머물면서 이 나라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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