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그리스도께서 이르신 께명을 삶으로 살았던 몰로카이섬의 다미안 신부. 세상이 버린 나환자들도 다미안 신부에게서만은 한 사람의 존엄한 인간일수가 있었다. 나환자들의 영원한 아버지 다미안신부의 고귀한 정신과 삶을 오늘에 이어받기 위해 제정된「다미안신부상」제1회 수상자 金掌珠 수녀(봉사상ㆍ포함성심시녀회) 소노ㆍ아야꼬(공로상ㆍ獸野綾子ㆍ일본인ㆍ소설가) 여사는 바로 이 시대의 다미안 신부라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다미안 신부의 생애를 오늘에 이어가는 나환자들의 진정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한국가톨릭 나사업가 연합회(회장ㆍ이경재 신부)가제정한「다민안신부상」제1회 수상자들이 하늘아래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이들을위해 펼친 형제적 사랑 그 진실의 실체를 나누어본다.
◆「봉사상」金掌珠 수녀
나환자와 고통 함께 해 온 修道生活 30여년
全國 돌며 移動診療 통해 延 27萬 名 치료
“환자는 나를찾 아온 예수님”
『내 모든 것을 다 바친다 하더라도 나환자들의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한 저는 나환자들의 진정한 벗이라고 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어쩌다 나환자들의 불편한 여건을 잠깐 잊는 자신에 대해 엄격한 자책으으로 가슴 아파하는 金掌珠 수녀의 모습에서 30여년 수도생활 거의 전부를 나환자들과 함께한 나환자의 사도, 그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사업가 연합회가 제1회 다미안신부상「봉사상」수상자로 자신을 결정한 사실에 대해 결코 자격이 없다면서 수락하기를 사양했던 김 수녀는 나병과 나환자들이 이땅에서 말할 수 없이 천대받고 괄시받던 1956년 나환자속에 뛰어든 개척자의 한사람이다. 『한 일이 없어 부끄러울뿐』이라는 김 수녀의 말과는 정반대로 흉내낼수 없는 고행과 인고의 발자취로 점천돼있다.
예비수녀로 봉사활동을 시작, 첫서원하던 56년한국 구라사업의 창시자 고 스위니 서 신부와 최시룡 박사(강남성모병원 만성병과장)를 도와 본격적인 구라사업에 뛰어든 김 수녀의 수도생활은 나환자들을 빼놓고는 허전할정도로 그들과 밀착된 사랑의 삶 그자체였다.
당시 6 ㆍ25 이후 피폐된 사회상황속에서 나환자들의 생활은 상상할수 없이 비참했다. 정착마을은 고사하고 다리밑과 움막이 생활터전의 전부였던 나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하는 일은 끊임없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한 그들의 실상에 안스러움과 함께 두려움으로 울기도 했던 김수녀는『고난과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지 않고는 결고 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수녀의 이동진료 여정은 경북지역에서시작, 경남지역ㆍ충청ㆍ전라지역으로 이어져 치료를 받은 환자는 연인원 27만 명을 헤아릴수 있다. 『사회와 주위의 몰이해로 무척 서운한때도 많았지만 인간적인 위로 보다는 하느님의 위로에 매달리고 묵상하면서 이길을 걸러왔습니다』확고한 신념속에서 나환자들에 대한 김 수녀의 특별한 애정이 그리스도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총장으로 피선된 기간중에도 간접적으로 환자들을 지원했던 김 수녀는 78년 나환자들과 함께 살것을 자원, 오륙도 정착촌 용호마을에서 나환자들과 재회, 봉사의 삶을 다시 열었다.
치료가 끝나 기구소독을 마치고난 뒤 나타나는 환자들에게 친절히 대할 수가 없을 때마다『이 환자가 바로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이라고 스스로 깨우쳐 노력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건강과 생명이 허락되는 때까지 나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할 것을 다짐하는 김 수녀는 사회가 그들을 외면하는 한 구라사업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아직도 나환자와 그자녀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많이 남아있음을 안타까와하며 죽음앞에선 환자에게 기도밖에 아무것도 할수없어 눈시울을 적시는 김 수녀. 그 소박한 마음과 뜨거운 사랑은 결코 가려져야할 자랑이 아니라 더 크게 확산되어야할 희망의 빛이기에 제1회 다미안신부상이 김 수녀에게 안겨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는게 그를 아는 이들의 중론이다.
◆소노ㆍ아야꼬 女史「공로상」
10年을 한결같이 사랑쏟아와
73년 라자로 마을과 因緣後치료 등 후원
日文壇의 대표적 作家로 사랑나눔 호소
일본 현대문단의 대표적 작가 소노 아야꼬 여사. (47세ㆍ일본인ㆍ소설가) 10년을 한결같이 나환자들에게 쏟아온 사랑이 제1회 다미안신부상「공로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정말 기쁩니다. 이렇게 값진 상을 저에게 주시다니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러울 뿐입니다』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수상 소감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하나 가득 담겨있다.
외국인으로 다미안신부상의 첫번째 수상자가된 소노ㆍ아야꼬씨는 73년 한국라자로마을(경기도 시흥군 외왕면 오전리)과 인연을 맺은이래 10년동안 변함없는 마음으로한국의 나환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쏟아왔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나환자들을 알게된 소노 여사는 73년 일본인의 사니까이씨(교또대학ㆍ나병전문의)를 매월 일주일간 한국에 파견, 라자로 마을 환자들을 치료케한 것으로 시작, 75년부터는 간호원 한명이 라자로마을에 상주토록하는등 환자들의 치료를 돕는것으로 나환자들과 결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73년 환자들이 월1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을 정해 성금을 보내기 시작한 소노 여사는 나환자들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어야한다는 신념으로 사랑의 사도역을 수행해왔다. 『어떤 형표로든지 남에게 도움을 태줄 수 있다는 환경은 은총를 받은 상태라고 봅니다. 신자로서 그 은총을 나누지 않는다면 신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여유가 주어진다면 사랑을 베풀수 있다고 말하는 현상에 대해 말과 살천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지적하는 소노여사는 일본사회에 하느님을 알리는 조그만 도구가 되려고 노력했을뿐 상을 받을만큼 한일은 도무지 없다고.
소노 여사는 자신의 천부적인 탤런트를 유용하게 쓸줄 아는 신앙인이기도하다. 개인적으로 또 이웃과 함께 정성으로 모은 성금을 보내는 것 외에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기회 닿는대로 리자로를 소개, 그 사랑의 파급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문단의 지성을 대표하면서 인기작가의 한사람인 소노 여사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또는 TV ㆍ라디오를통해 나환자들과의 사탕 나눔을 호소하는데 서슴없이 앞장선다. 그 같은 실천력은 일본사회안에서 차지하고있는 그녀의 위치 이상으로 아름다운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매주일 팬들이 보내오는 수많은 편지에 일일히 답장하며 나환자들에 대한 코멘트를 어김없이 적어놓는 그녀의 정성앞에는 높기만한 이방인의 벽도 한줌의 재로 허물어질수밖에 없다. 그만큼 한국나환자들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뜨겁고 진지하다.
54%「먼데서 오신 손님」으로 문단에 데뷔, 「無名碑」「기적」「사랑」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삶속에서 진실을 찾아내 목자들에 펴보이는 질솔한 작가로 평가를 받아온 소노 여사는 독자들과 대화하는 작가로서도 그 위치를 다져왔다.
특히 성심유치원에서 성심여대까지 가톨릭학교에서 수학, 전통적인 가톨릭 분위기가 바탕에 깔린 그녀의 작품ㆍ생활태도로 가톨릭 교세가 미세한 일본 사회에 가톨릭을 알리는데 기여한 그녀의 숨은 공로는 지난 79년 교황으로부터 십자대훈장을 받음으로써 드러났다.
같은 소설가로 역시 인기작가인 미우라ㆍ슈몽(三浦珠間)과는 53년에 결혼, 동지적 삶을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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