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과 어우러져 옛성현이 살았던 정신세계를 글자 한획 한획에 되살리는 것, 이것이 송재 도이석(63ㆍ아우구스띠노) 선생의 요즘 나날이다.
해방전 어린이교육에 몸담은이래 35년여. 70년이후에는 대학행정의 송재선생의 인생에서 활동해온 송재 선생의 인생에서 묵향은 언제나 함께 해왔다.
『글씨에는 그사람의 인품과 자라온 배경, 정신적 바탕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서로 어우러져 높은 지경에 도달해야만 가치있는 서예의 경지를 이를수 있는것입니다.』
아울러 서도의 생명력을 강조하면서 송재 선생은 현재 미불체(米불體)를 통해 힘있고 고차원적인 예술성을 찾고있다고 밝힌다.
1938년 대구사범 심상과를 졸업할 당시 미서예에 매력을 느껴온 송재 선생은 1957년 대한교련이 주최한 제1회 전국교직원 서예실기대회에서 수위입상한뒤 서예에 대한 열망은 더욱 뜨거워갔다. 다음해에도 이대회서 5인공동으로 수위입상한뒤 국전에도 출품, 73년 제22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서예부문에서 일선하면서부터 한층 깊이있는 세계를 찾게 됐다.
73년 국전을 계기로 바꾸고 끈질긴 생명력을 내포한 안진경체제에서 미불체로 전환, 73년ㆍ80년국전에 일선한데 이어 79년8월에는 한중 서화교류의 일환으로 자유중국「타이페이」국립역사박물관 초청으로 일주일간 열린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송재 선생은 지난 61년 7월에는 국민학교 4ㆍ5ㆍ6학년용 글씨본을 펴낸바 있는데, 70년이후 대학생들에게 서예의 세계를 가르치기도 했다.
57년 12월 가톨릭에입교, 부인 김청자(엘리사벳)여사와의 사이에서 4남2녀를 둔 송재선생은 현재 삼덕본당 레지오마리애「천사의 모후」쁘레시디움에서 서기로 활동중인데, 지역사회에 대한 선생의 열의 또한 깊어서 지난 60년부터 70년까지 10년동안을 영천군의 화덕국교 교장을 지내면서 화국국교의 복지 및 화덕군 전체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힘을 쏟기도 했다. 그 공로로 66년에는 경향신문사 주최「국민이 뽑은 희망의상」올랐다
최근에는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송재선생은 한국천주교회 2백주를기념해 이벽 선생의「천주공경가」를 작품화, 천진암에 기증하기위해 제작에 정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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