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겨울 어느날, 잔 쥬강은「생 세르방」거리에서 눈은 멀고 중풍으로 박신불수가 된 너무나 불쌍한 할머니 한분을 자기 집으로 모셔와 정성껏 돌보았다. 한 순간의 망서림도 없는 애덕의 실천이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이 사랑과 더불어「경로 수녀회」는 탄생됐다. 가난하고 버림 받은 노인들의 수호자이며 경로 수녀회 창립자 잔 쥬강 수녀는 10월 3일「로마」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잔ㆍ쥬강의 시복을 계기로 복음적 청빈 속에 가난하고 버림 받은 노인들과 함께 했던 숭고한 생애를 묵상했다.
십자가의 마리아 수녀 잔 쥬강은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인 1792년 10월25일 프랑스「깡깔르」에서 몹씨 가난한 집안의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녀가 네살 때 아버지는 바다에서 실종 되었으며 집안은 어머니가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가난과 전쟁의 와중에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딸에게 기도와 교리ㆍ읽고 쓰기를 엄격히 가르쳤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가난의 의미와 빈곤이 가져오는 모든 역경을 가슴 깊이 체험했던 잔 쥬강은 가난한 삶속에서도 끝없이 겸손하며 이웃에게 봉사하는 헌신적 삶을 배우고 실천했다. 그 체험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봉사적 삶의 기본 바탕을 이루었다.『하느님은 내가 필요하십니다. 아직은 모르지만 하느님이 어디에다 나를 쓰실 일이 있으시답니다』부르심을 무섭게 타오르는 열정으로 받아들인 잔 쥬강은 25세가 되던 1817년 고향「깔까르」를 떠나「생세르방」지방의 생로세 병원의 간호원이 됐다. 병원에서 잔 쥬강은 자기 건강을 해칠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해 환자들을 보살폈으며 그 결과 병을 얻게 되었다. 그 무렵「탄복하올 어머니」제3회 회원으로 정결 서원을 한 잔 쥬강은 사도직 활동, 공동체의 일치, 정기적인 기도 생활로써 영성적 삶을 풍요히 가꾸어 나갔다.
1839년 겨울, 거리에서 반신불수에다 눈까지 먼 불쌍한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딸이 어머니를 모시듯 정성껏 돌보는 것으로 부르심에 응답코자한 잔 쥬강의 새로운 생애가 시작됐다.
그것은 경로 수녀회를 탄생시키게 될 결정적인 첫 걸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잔 쥬강의 사랑의 집은 늘어나는 노인들로 만원을 이루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잔쥬강과 동료들이 선택 했던 애덕의 생활은 기도에서 힘을 얻고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하나의 수도 공동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사이 70여명으로 늘어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잔과 동료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동 활동과 함게 은인들의 도움을 요청 할 수 밖에 없었다. 잔 쥬강의 고귀한정신과 삶은 많은이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그들은 부자 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유명한 사람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이 사랑의 공동체를 돕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선조장에서 일하는 몇 백명의 노동자들이 그들 스스로 일주일에 1페니씩 기부, 공동체에 큰 힘을 주었다.
1842년 잔 쥬강은 이 공동체의 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그 구역 보좌 신부로 공동체의 영성지도를 맡았던 르빠이에 신부는 아무런 이유, 설명도 없이 잔쥬 강을 해임시키고 그 자리에 자기의 제자였던 23세의 마리 자매를 앉혔다. 당시 51세로 19개월만에 원장직을 물러난 잔쥬 강은 이 결정에 그대로 승복, 오직 침묵으로 겸손되이 받아들였다. 이같은 잔쥬 강의 평온 때문에 공동체內의 역할 변화는 공동체 밖에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은 전처럼 잔 쥬강을 경로회의 창설자로 이 조그마한 공동체의 첫 장상으로 생각했다.
1845년 영웅적인 봉사활동으로 평가받은 잔 쥬강은 프랑스 아카데미(한림원)공로상(1급)을 받았다. 여기서 받은 상금 3천프랑으로 잔 쥬강은 불편한 자신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젊은 원장과 상의,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경로원을 확장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잔 쥬강 수녀에게 결정적인 은퇴 시간이 닥쳐왔다. 르빠이에 보좌 신부에 의해 모원으로 불려온 잔 쥬강은 그 때부터 죽을대까지(27년간)모원 수련소에서 젊은 수련자들 틈에서 숨어 살아야했다. 27년간 은둔의 삶을 통해 잔은 수련자들에게 생활의 모범과 현명한 조언을 통해 복음 정신을 심어주고 그 정신이 사도적으로 피어 나게 했다 잔의 이 소리없고 숨겨진 생활은 그가 만든 수녀회에 그녀와 함겨 살았던 모든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배로운 것이 되었다.
1879년 8월 29일 하느님은 잔을 당신곁으로 부르셨다.잔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채 그녀가 살았던것 처럼 단순하게 선종했다. 1902년 모원의 지도 신부에 의해 쓰여진 경로 수녀회 역사에 의해 진실은 드러나 잔 쥬강은 원래의 창립자의 위치로 복귀됐다.
수녀로서 파란 많은 생애를 그리스도를 따라 살다간 잔쥬강은 1979년 7월 13일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가경자」로 선언되었고 지난 10월 3일 복자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완전히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했던 잔 쥬강의 경로 수녀회는 오늘날 세계30여개국에서 2백 56개의 양로원을 운영,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들의 벗으로 봉사하고있다. 전 세계에서 4천 4백명의 봉사 수도자들이 3만2천명의 무의탁 노인과 복음적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정격」「청빈」「순명」의 3大허원외에「환대」의 허원이 포함된 경로수녀회의 사목은「설교」가 아니라「진복팔단의 복음적 정신을 그대로 사는것」으로 우리나라에는 1971년 진출, 현재 청주교구(청주시 사천동29~1)에서 양로원을 운영, 잔의 정신을 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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