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렐루야! 알렐루야! 예수 부활 하셨다. 예수 부활은 사랑이 죽음에 승리 했음을 알려주는 가장 기쁜 소식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어둔밤이라고 한다면 부활 사건은 밝아오는 새벽이다. 낮 열두시 쯤 되자 어두움이 온 땅을 덮어 오후 3시까지 계속 되었다. (루가 2344)이 어둔 밤은 인간의 정의가 사라진 밤이며 악이 선을 죽인 밤이다. 이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상 죽음은 정의에 대한 불의의, 봉사에 대한 군림의, 사랑에 대한 미움의 승리처럼 보였다. 그러나『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 잡혀 계신 분이 아니었다』(사행2ㆍ25).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아가 8ㆍ6) 까닭 이었다. 예수 부활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적 사건 곧 사랑은 죽음 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구체화 된 사건이었다. 하느님과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 까지 마다 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결국 옳았다는 확증을 하느님은 새벽의 부활로 응답 하셨다. 십자가상에서 처절하게 부르 짖던 당신 외아들의 절규에도 그토록 하느님이 침묵을 지키신 부활로써 응답하기 위함 이었다.
흔히 신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분리 시켜 생각 한다. 그러한 생각은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 장사 지내는 기도로써 끝 맺은 십자가의 길 신심 행위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일생은 무덤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고 죽고 묻힌 것으로 끝나 버렸다면「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Ⅰ고린15ㆍ14) 이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예수 부활로써 끝 맺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최대의 사랑으로써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셨다. 이 것은 전 인류가 하느님께로 가는 여행의 표지이며 수단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두움 한가운데서도 사랑에 살고 사랑으로 악에 승리하여 사랑 자체 이신 분께로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갈 길임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 부활은 현세에서 고통 당하고 죽어야 하는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부활 하게 되리라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우리 부활의 확증이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장차 있을 우리 부활은 전표 (前表) 라고 하였다. 이처럼 예수 부활은 현세의 우리 삶을 밝혀 주는 희망이다.
또한 예수 부활은 우리 믿음의 기초이다. 실로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가르침의 중심이다. 만일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가르침도 헛 될뿐만 아니라 종국에가서는 인생 자체가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인생관은 부활 신앙의 기초 위에 서있다. 그리스도교의 인생관은 부활 신앙의 기초 위에 있다. 예수 부활은 또한 복음 선포 내용의 중심이다.
사도들이 순교 하기까지 예수 부활 사건을 굳세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부활 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직접 목격하였고 체험한 까닭 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은 우리을 우리의 모든 번민과 고뇌, 불안과 슬픔, 허무와 절망, 죄와 죽음에서 해방 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그와 함께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과 힘의 원천이다.
예수 부활의 정확한 날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부활이 일요일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요일이「주님의 날 (主日)」이되었으며 모든 주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부활 축일은 교회의 가장 크고 오래된 축일로서 그 예표는 이미 구약 성서의 빠스카 (逾越節) 에 기원을 두고 있다.
유대교의 빠스카 축제와 신약의 빠스카인 부활 축제와의 연관성은 부활 축일을 정하는데 있어도 작용 했다. 오늘날에도 부활 축일은 유대교적 계산법을 활용 하고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유대교가 초봄 니산 (Nisan) 달 14일에 유일제를 지내니까 부활 축일 토요일에 관계 없이 그대로 하자고 주장 했고 서방 교회에선 니산을 14일 만원이 지난 후 첫 번째 오는 주일로 정하자고 주장함으로써 서로 대립 해오다가 마침내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춘부 다음, 만월 (滿月) 이 지나고 첫 번째 오는 주일」로 결정 하였다. 단, 만월이 주일에 있게 되면 부활절은 그 다음 주일이 된다. 이렇게 하여 부활절은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에 있게 되는 이동 축일이 되었다. 주일 중의 주일인 부활 주일은 하나의 긴축일로서 예전에는 한주 간의 하루 하루가 모두 축일이었으며 이 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 한주간 동안 계속 흰 옷을 입다가 다음 주일에 그 옷을 벗었다. 그래서 그 날을 사백 주일 (師白主日) 이라고 불렀고 부활 축일은 사백 주일에야 끝났다.
부활 축일에는 달걀에 예쁜 색깔과 도안으로 그림을 그려 선물로 주고 받는 관습이 있다.
달걀은 딱딱해서 죽은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젠가 새 생명이 태어나게 되므로 딱딱한 돌무덤을 헤치고 새 생명으로 뛰쳐 나온 예수님의 부활을 잘 상징해 준다.
또한 달걀은 다산 (多産) 과 풍요의 상징 이기도 하다.
암 탉이 여러 개의 알을 낳아 병아리를 까듯이 예수 부활은 인류에게 새 생명과 많은 생명의 기원이 된다. 색칠만 계란을 서로 선물하며 나누어 먹는 관습은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 같아 관습의 의미가 한층더 돋보인다.
부활 축일은 우리에게 크나 큰 기쁨을 준다. 부활이 주는 기쁨은 이 세상에 존재 하는 가장 순수한 기쁨이다. 이 기쁨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요한 16ㆍ22) 이 기쁨에는 항상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비롯하는 평화가 내포 되어 있다.
우리는 기쁨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사순절 동안 부르지 못했던「알렐루야」를 마음껏 힘차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알레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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