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의 거성 양기섭 신부가 지난 3일 오후 6시50분 성지 배론사제관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중 선종했다 향년 77세.
경향신문 초대사장ㆍ가톨릭의대 창설, 명동 성모병원 건립 등 교회 사회 문화 사업에 굵직한 업적을 남기고간 양 신부의 유해는 원주 주교좌 원동성당에 일시 안치 되었다가 이날 명동 지하 성당으로 옮겨 안치된 후 5일 오전 10시 영결 미사 후 용산 성직자 묘소에 안장됐다.
김수환 추기경ㆍ노기남 대주교ㆍ윤공희 대주교ㆍ지학순 주교ㆍ박정일 주교를 비롯 60여 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한 양기섭 신부 영결미사에는 양 신부의 친지들과 1천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 고민의 업적을 기리고 영복을 기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미사중 강론을 통해『양 신부는 그릇 중에 큰 그릇이었으며 현대 한국 교회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게 있는 분』이라고 추모하고『앞에 내다본 그의 원대한 스케일은 생전의 몇 가지 업적이 입증해주고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확실히 비범한 인물이었으며 거목과 같은 분이었다』고 지적한 김 추기경은『그는 거목과 같은 큰 나무였기에 보호의 역할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바람도 일으켰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또한 김 추기경은 고집스럽고 무뚝뚝하면서도 자상하고 정열적인 그의 성품을 그의 수호성인 사도 베드로에 비교하면서 사도 베드로와 같이 이 땅의 교회를 위한 그의 무한한 노력과 특히 말년에 설암(舌癌) 과 싸우면서 성지 개발에 쏟은 그의 정렬과의 지력을 높이 평가했다.
1905년 12월 31일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한 양 신부는 1930년 10월 26일 평양교구 사제로 서품, 평양 선교리본당과 진남포 본당 주임을 역임한 후 1946년 서울교구로 이적했다. 서울로 이적한 양 신부는 경향신문 초대사장ㆍ명동 성모병원 원장ㆍ서울대교구 부주교 겸 명동 주임ㆍ일산주임ㆍ가평주임ㆍ신당동주임 겸 중앙 의료원 원장 등을 역임한 후 1978년 5월 18일 사목일선에서 은퇴했다.
은퇴와 함께 양 신부는 원주교구 관할 배론성지개발책임자로 배론 성역화 사업에 투신, 10년 가까이 배론을 개발하면서 황무지였던 배론의 면모를 일신시켜 놓았다. 한편 양 신부의 선종으로 원주교구는 14일 거행키로 한 배론 성지 건물 축성식을 무기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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