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며 극작가인 이서구 옹(요한)이 지난 5월 25일 오전 6시30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라이온스 아파트 A1호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李 옹의 영결미사는 부인 金仁玉(루치아) 여사와 가족친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언론계 종사자 예술인 등 1천5백 명이 애도하는 가운데 본당(홍제동)주임 김수창 신부 주례로 봉헌됐으며 영결미사에 이어 경기도 시홍군 소래면 선산에 안장됐다. 51년 피난시절 부산에서 메리놀회 권신부로부터 부인과 함께 영세입교한 李 옹은 홍제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초대 총회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과 가톨릭 문우회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60년대초 교회활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한 李 옹은 김수환 추기경과 피난시절 대구에서 3년간 생활하면서 맺은 인연으로 가까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1899년 서울에서 태어난 李 옹은 활달한 성품과 다방면에 걸친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는데 20세에 동아일보기자로 시작, 조선일보, 東京특파원을 거쳐 1926년 尹白南씨 등과 함께 극단 土月會를 창립, 그후 극예술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이옹이 집필한 「햇빛이 쏟아지는 벌판」「장회빈」「강화도령」「민며느리」등 위드라마는 50년대와 60년대률 풍미한 화제작들로 한국영화 방송드라마사상 많은 이야기거리를 낳았었다.
또한 그의 사극작품들은 사극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인기 드라마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李 옹은 한국극작가 협회장(45년), 한국무대 예술원장 (50년), 방송협회의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해왔으며 화랑금 성무공 훈장(53년), 방송문화상(60), 서울시문화방(64년), 대한민국 훈장 등 백장(76년)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金仁玉 여사와 1남 3녀가 있다.
♣고침
지난1259호7면 故 李瑞求 옹 별세기사중 李 옹의 세례명「요한」은「요셉」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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